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
지난 6월 29일 서해교전 발생과 함께 답을 찾지 못했던 남북관계가 다시 풀릴 조짐이다. 북한이 서해교전 발발에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제7차 장관급 회담을 서울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례적으로 이산가족 상봉 및 철도 연결 등 의제까지 제시하면서 적극성을 보였다. 대부분 북한의 행동에 의아해 한다. 지난 4월말 금강산 댐 붕괴 위험이 거론되면서 북한은 남북경협추진위원회 개최를 거부했다. 그리고 서해교전도 일으켰다. 그런데 갑자기 대화를 재개하고 제안했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따라서 앞으로의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다. 비록 대화는 재개되지만 북한이 언제 또 어떤 빌미를 잡아 남북관계를 냉각시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 상당부분은 우리가 북한을 우리식으로 이해하고 결론을 내리는 데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최근 경제관리 방식을 개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사안에 대해 우리는 은근히 북한이 중국식 시장개혁을 단행하고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만일 북한이 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을 한다.
지금 북한은 시장기구를 도입하는 중국식 개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 차원의 경제관리 능력을 제고해 사회주의를 완성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국정가격을 시장가격으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낮은 국정가격 책정을 통해 북한주민의 생활을 보장해 왔던 방식을 주민이 월급으로 모두 해결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생산부문에서도 생산량 모두를 적정가격으로 국가가 구매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국가의 생산부문에 대한 장악력을 제고하려고 한다.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있다. 이미 공업부문은 모두 국유화돼 있지만, 농업부문은 협동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토지정리사업을 통해 국유화의 기반을 다지고 생산된 물자를 모두 국가가 수매할 수 있으면 사실상 국유화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세금이 부활하고 있는 듯하다. 협동농장에서는 15%만 국가에 바치고 나머지는 국가가 높은 가격으로 수매를 하기로 했다. 일종의 세금인 것이다.
최근 북한의 대화재개 문제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경제관리 개선작업은 어떤 연관관계를 갖고 있을까. 아직 이렇다 할 연결고리를 말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북한이 취하고 있는 경제관리 개선작업은 김일성 사망 이후 오랫동안 준비해 온 작업이라는 점에서 대외관계도 이러한 틀 안에서 움직일 것이라는 원칙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남한은 물론 미국과도 관계개선을 한다는 원칙을 세웠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이것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북한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체제에 위협적인 사안이 발생하면 일단 후퇴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의 대화단절은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북한은 내부적으로 국가의 경제관리 능력을 제고해 완전한 사회주의 경제를 달성하고, 대외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회주의를 완성하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남북경협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현 시점에서는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하다. 일단 북한이 지향하는 경제방식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다. 근본적으로 운영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남북경협은 물과 기름 같은 관계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북한은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자 한다. 그런데 남한기업이 투자한 기업은 사유화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북한내에서는 남한기업이 소유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시장에서도 북한은 노동자의 개별적인 고용이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투자기업은 노동활용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이밖에 서로 융화되기 힘든 면이 많을 것이다. 만일 북한이 나진선봉 외 지역을 개방해 그 곳을 기술과 투자를 받아들이기 위해 자본주의식으로 운영한다고 하면, 국한된 지역에서만 남북경협을 심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국간 회담이 대단히 중요하다. 당국간 대화를 통해 물과 기름을 제도적으로 융화할 수 있도록 틀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경협은 그 틀을 바탕으로 진행돼야 한다. 아직도 남북경협 분야는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