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벤처 시련기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파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코스닥시장에 등록돼 있는 대표적인 정보기술(IT) 벤처기업에 대한 잇단 제재는 전체 시장 분위기를 좌우할 만큼 파급효과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올들어 장미디어인터렉티브와 아라리온의 대표이사가 뇌물공여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최근 에스엠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가 자금횡령 혐의로 긴급체포되기까지 코스닥 벤처기업들이 줄줄이 정부의 포획망에 걸려들고 있다. 지난 24일 코스닥 황제주로 군림하던 새롬기술이 내부자거래 혐의로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검찰에 고발되면서 정부의 벤처 압박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 국내 주식시장은 업계의 ‘살려달라’는 아우성과 시장 참여자들의 벤처에 대한 ‘각성 요구’가 뒤섞이며 매우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업계는 정부의 벤처기업에 대한 제재가 대선을 앞둔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됐다고 믿는 분위기다. 코스닥 벤처기업 A사의 사장은 “최근 봇물 터지듯 일어나고 있는 벤처 비리는 정치적인 논리에 입각한 벤처 죽이기”라며 정부 측을 성토하고 나섰다. 하지만 아직 전반적인 시장 분위기는 정부가 본격적으로 벤처 제재의 칼날을 빼어든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IT산업 성장의 밑거름으로 불리던 대표적 IT벤처기업들의 대표가 줄줄이 구속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주식시장에서는 사주들의 잇단 구속으로 주가가 얼마나 떨어질까 하는 걱정보다 이를 계기로 지리하게 미뤄지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기를 내심 바라는 눈치다. 증권사 코스닥기업 담당 애널리스트는 “현재 코스닥 IT벤처기업 대부분은 순수하게 영업으로 벌어들인 이익이 미미한 데도 불구하고 경기침체 국면에서 잘 버티고 있다”며 “이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엄청난 자금을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자금을 기업 성장의 디딤돌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버티기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제 정부의 제재 목적이 의도적인지 아닌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구조조정이 ‘필요’가 아닌 ‘당위’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부는 무조건적인 제재를 통한 산업 재편보다 원활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업계는 이번만 버티면 현재 확보하고 있는 자금으로 다시 한번 ‘랠리’에 동참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버려야 할 때다.

 <디지털경제부·조장은기자 je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