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창 IT담당 부국장
지난 주말 제주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서머포럼에서 이공계 인력난 문제가 거론됐다고 한다. 앞으로 5년간 소프트웨어, 통신기기 등 IT분야 인력이 10만명 정도 부족할 것이란 지적과 함께 이공계 인력 양성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재계 인사들이 여름휴가를 겸한 포럼에서 이처럼 이공계 인력난을 걱정했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요즘 쓸 만한 연구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얘기가 IT분야 업체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그만큼 IT기업체의 연구 인력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신기술·신제품 개발에 적신호가 켜졌다며 우려하는 기업들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공계 기피로 공급인력이 줄어들고 그나마 연구원들의 이직도 잦기 때문이다. 대학수능시험 이공계 지원자가 5년 만에 절반으로 줄어들고 이공계 고급인력인 연구원과 대학원생의 절반이 비이공계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잘 대변해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명문대 이공계 학생의 3분의 1이 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기술인력 부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공계 기피현상이 이미 10여년 전부터 시작됐고 우리나라도 지난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최근 부쩍 심해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빚어진 계기는 모든 나라가 시기만 다를 뿐 동일하다. 19세기 초 미국은 선진 과학기술을 받아들이느라 바빴다. 너도나도 당시 과학 최강국이었던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이들 유학파가 국내로 돌아오면서 미국내 과학기술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시장논리에 의해 당연히 사회적 대우가 낮아졌다. 독일도 90년대 초 유럽 경제가 좋지 않았을 때 과학자들을 대량으로 해직시킨 적이 있는데 이것이 이공계 기피로 나타났다. 지금은 경제가 좋아져 그때 해직된 과학자들을 다시 고용하고 있지만 당시 충격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장에 주력하던 70∼80년대 한국인들은 과학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만 해도 어린이들의 꿈은 단연 ‘과학자’였다. 대통령도 제치고 1등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때 이공계 연구원을 가장 먼저 정리대상으로 삼았고 어려운 학업과정에 비해 소득·직급 등 사회적 보상이 상대적으로 미흡해지면서 뒤로 밀려나 지금은 연예인·스포츠맨 등이 단연 1위다. 사회는 자꾸 ‘부자 되세요’라고 부추기고 있다. 소외되는 ‘공돌이’가 될 바에는 차라리 장사를 하든가 고시를 보라고들 한다. 주식투자로 등록금을 탕진하는 대학생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이미 사태는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물론 모든 나라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이공계 대학 지원을 골자로 한 법까지 만들었고 독일은 물리나 화학 등 적어도 2가지 과목을 택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도록 과학교육을 강화했다. 우리나라도 부처별로는 물론 대통령이 위원장인 과학기술위원회까지 열어 대책을 내놓았다. 이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국가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엊그제 산자부와 경제5단체가 공동으로 발표한 ‘2010년 산업의 세계 4강’ 비전 달성도 불가능함은 물론이다. 산업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술·인력·입지·금융 등 4가지 요소가 고르게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10여년 전부터 심화된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엔지니어의 평균연령이 우리나라보다 10년 이상 높아져 산업이 첨단산업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결국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공계 인력양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잇따라 내놓는 대책을 보면 실현 가능성을 떠나 대부분 상위 5%만을 위한 방안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이제는 일부 이공인을 위한 특혜보다 엔지니어들이 단지 사회에 기여하는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중간 수준의 이공인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제대로 정착될 때 어린이의 첫번째 꿈도 다시금 ‘과학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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