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사장
뉴 밀레니엄은 인간 게놈(genome)과 함께 시작됐다. 90년에 시작된 국제적인 컨소시엄인 인간게놈프로젝트가 10여년의 과업을 마무리하고 2000년에 첫 인간 유전체 초안을 발표했을 때 세계는 당장에라도 생명의 비밀이 밝혀질 것으로 생각하고 열광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당초 10만개가 넘을 것으로 생각했던 유전자 수가 당초의 예상보다 훨씬 적은 3만∼4만개로 추정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몸에는 10만여 종류의 단백질이 있다는 사실과 종합해 보면 한 유전자에서 몇 가지 종류의 단백질이 나올 수 있다. 여기서 단백질체학(proteomics)의 어려움이 있다. 유전체학에 비해 생체내의 단백질을 규명하고 특성을 밝혀내며 구조를 규명하는 단백질체학은 훨씬 더 복잡하고도 어렵다는 사실을 과학계가 새로 발견했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끝나면서 제약업계와 바이오업체는 모두 이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어떻게 더 나은 신약을 상품화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유전체학의 연구 성과를 상업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유전자의 최종 산물인 단백질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상황은 게노믹스 기업의 대표주자인 셀레라가 단백질체학을 대대적으로 수행하기로 공표하고 신약발굴 전문 바이오벤처를 인수, 창업자인 벤처 사장이 물러나는 등의 모습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제는 단백질체학 시대다. 단백질체학 연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새로운 단백질을 발견하는 연구다. 최근 영국의 옥스퍼드 글리코사이언스라는 회사는 새로 발견한 암 관련 단백질 4000여개에 대한 특허를 작년 12월 출원했다. 엄청난 양의 특허다. 둘째는 새로운 단백질의 기능을 확인하는 연구다. 셋째는 새로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하는 연구다. 여기서 신약발굴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연구는 바로 세번째인 3차원 구조를 규명하는 연구다. 단백질의 3차원 입체 구조를 알면 독성 없는 우수한 신약을 더 쉽고 빠르게 발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유전체학 연구에 집중하던 많은 기업들이 단백질체학 연구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으며 또 연구의 초점이 신약 발굴로 옮겨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정보기술(IT)이 바이오 연구에 적용되는 분야도 바뀌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대한 유전자 정보를 검색하고 유사성을 찾아내기 위한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이 관심의 초점이었지만 최근에는 신약을 발굴하는 데 필요한 각종 화합물들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분석하는 ‘화학정보학(chemoinformatics)’이 부상하고 있다.
이처럼 첨단 과학기술의 흐름에 따라 바이오산업의 관심 분야들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은 이러한 바이오 분야의 변천에도 기술개발 및 연구의 최종 목표는 ‘신약 발굴’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연구의 최대 목표는 인간의 질환을 치료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한국은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열세이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는 선진국에서 만들어내는 기초과학을 어떻게 상업화할 것인가에 단기적으로 지원을 집중해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과거 일본에서 미국의 기초과학 연구결과를 활용해 상업화하는 기술에 집중 투자해 경제적 결실을 맺은 전략과 유사하다. 또한 기초연구는 국가적으로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세계적 유전체학 열풍으로 수많은 바이오 벤처들이 설립됐던 우리나라다. 열기가 식으면서 장기투자가 필요한 바이오산업의 특성이 무시된 투자 관행과 당장 매출이 나오지 않는 바이오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동일 잣대를 고집하는 자본 시장 등 아직 바이오기업에 비우호적인 환경에서 바이오 벤처들도 초기 시행착오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때에 국내 바이오업체와 정부 정책당국은 세계 바이오산업계의 큰 흐름을 읽고 한국 바이오산업의 중장기 육성 전략을 차분히 수립해야 한다. 바이오산업에서 상업화 분야는 바로 신약 발굴을 의미한다. 지혜를 모아 신약 발굴에 산·학·연이 힘을 모아야 세계적인 신약을 발굴해야 선진국 대열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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