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각광받다가 적자기업으로 추락한 소프트웨어 업체 중 상당수가 돈방석에 앉아있는 데도 월가에서는 이들 업체를 외면하고 있다. 대부분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주가가 기술주 매도와 형편없는 실적으로 상장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이들 업체는 적자 행진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빠른 속도로 보유 현금을 소진해가고 있지만 일부 업체는 아직도 돈이 넘쳐난다.
특히 이서시스템스, 커머스원, E닷피파니 같은 업체는 주가가 순 현금가치마저 밑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기업은 문을 닫고 부채를 상환하고 현금을 투자자에 돌려주고도 주주들이 이익을 남길 수 있게 된다. 자산을 매각하거나 기술을 팔아 돈을 챙길 수도 있다. 노던테크놀로지펀드의 조지 길버트 공동 매니저는 “이런 업체는 살아있기 보다 죽어야 더 가치가 나간다”고 빗댔다.
이서시스템의 예를 보자. 이 기업은 이동통신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판매하는 업체로 지난 분기 순 현금 보유고가 1억9700만달러인데 반해 주식 시가총액은 1억6100만달러다. 이서는 지난 3월말 현금과 단기 투자자산이 4억7200만 달러, 전환후순위채가 2억7600만달러라고 신고했다. 메릴린치 첸홍 판 기술전략가는 “이론적으로 이런 기업은 주식을 모두 사서 부채를 갚아도 돈이 남는다”며 “하지만 그 일을 실행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아무튼 이런 기업은 구조조정과 감원을 하면서도 아주 빠른 속도로 현금을 쓰고 있어 모험 투자는 빠를수록 좋다.
이서는 3월 분기에 5200만달러, 커머스원은 지난 3개월동안 5900만달러의 현금을 각각 썼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 업체의 주가가 바닥을 기는 이유는 있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영업망이 완전히 망가져 도저히 회복되기 힘든 경우다.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소프트웨어 메이커인 커머스원은 지난 6월말 마감된 분기에 매출이 2800만 달러로 73%나 격감했다. 데이비드L밥슨앤드컴퍼니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빈센트 무스콜리노는 “이런 기업은 경영진이 이익과 손실 관리 능력마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주식 가치가 현금 잔고를 밑돈다”며 “경영진은 매 분기 엄청난 현금을 써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자상거래 사이트 구축용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레드우드 시티의 브로드비전은 지난 2년 동안 2억달러 이상을 쓰고도 지난 6월말 현재 현금과 단기 투자자산 1억1100만달러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기업에서 돈을 펑펑 써대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대부분 경영진은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같이 일한 참모를 해고하거나 고객과의 유대 관계를 쉽게 끊지 못한다. 창업자가 회사의 상당 지분을 계속 보유하면서 한 때 가치가 수십억달러였던 회사를 헐값에 매각하는 것을 막는 일도 흔하다.
주주 활동가 워렌 캔더스는 이에 대해 “경영진 의도는 현금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남아있는 것”이라며 “경영진은 자산을 관리하는 대가로 급여를 받으므로 자산이 많을수록 더 많은 급여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들 기업은 주주들에게 특별 현금 배당금을 지불하고 시장 가격에 프리미엄을 얹은 가격으로 기존 주주의 보유 주식을 되사는 자사주 공개매수를 시작하거나 아니면 회사 문을 닫고 현금을 되돌려 줄 수도 있다. 이외에도 다른 기업과 합병하거나 스스로 매각하는 방법도 있다. 헤지펀드와 기업 사냥꾼들이 나서서 최근 현금이 많은 적자기업이 감춰놓은 현금을 주주에 되돌려 주도록 유도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실은 아직은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가 섞여 있는 상황이다.
<박공식기자 kspark@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