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NTT그룹에 필적할 수 있는 통신그룹이 탄생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언제나 ‘노(NO)’였다. NTT란 이름이 일본내에서 갖는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통신업계에 메이저는 단지 NTT 하나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마이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선전화에서 이동전화, 브로드밴드까지 일본 통신산업에서 언제나 ‘NTT’가 빠지지 않는다. 분야별로 지배적인 1위이거나 혹은 시장을 뒤흔드는 신규 진입자가 바로 ‘NTT’다.
이런 NTT에 대항하는 세력이 드디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심엔 ‘도쿄전력’을 포함한 전력계열업체들이 있다. 외곽에는 IIJ, 일본텔레콤, DTI 등 분야별 노하우를 가진 업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도쿄전력이 출자한 통신업체인 도쿄통신네트워크(TTNet)가 최근 미쓰비시전기로부터 이 회사 계열 ISP업체인 DTI의 주식 30%를 약 8억엔에 인수했다. TTNet은 DTI와의 제휴를 계기로 ISP사업 진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3년전에 ISP사업에 진출한 이래 회원수 20만명에 머물고 있는 TTNet은 양사를 합친 50만 회원을 바탕으로 첫 목표 100만 회원 유치를 목표로 내세웠다. 도쿄전력이 인터넷 접속 및 콘텐츠 제공 사업에 발단을 마련한 셈이다.
이에 앞선 7월 중순경 도쿄전력, 간사이전력 등 전력계 10개 업체들이 출자해 지난해 10월 설립한 이른바 ‘전력계통신업체’인 파워드컴이 IIJ(Internet Initiative Japan)와 경영통합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IIJ는 인터넷 서비스 분야의 강자로서 지난 99년 국내 주식 시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해 주목을 끈 업체다. IIJ는 인터넷 분야에서 NTT의 자금력, 인지도 등에 밀리면서도 기술과 노하우로 버텨왔으나 결국 한계에 달해 전력업체에 손을 내민 형국이다. 파워드컴이 이미 내년 4월까지 TTNet과 합병하기로 합의한 상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삼자간 합병이 진행될 수 있다. 한편 다른 전력계열 통신자회사들과의 제휴 및 통합 협상도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도쿄전력은 일본텔레콤과 유선통신부문 매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텔레콤의 유선통신 부문 매출액은 지난해 약 3900억엔에 이른다. 여기에 전력계열의 통신 자회사 10개의 매출 합계 3700억엔를 합치만 이것만으로도 유선통신사업 부문 2위 KDDI그룹과 거의 같은 규모를 갖추게 된다. 일본텔레콤의 유선통신 인프라와 운용 노하우를 얻는 것은 물론이다. 여기에다 미국 통신업체와 제휴를 맺을 것이란 소문도 설득력있게 떠돌고 있다.
전력계업체들은 잇단 제휴와 매수, 합병 등을 통해 자신들이 갖지 못한 기술, 노하우, 통신인프라 등을 하나씩 손에 넣고 있다. 여기다 마지막으로 NTT 이외의 다른 통신업체들이 갖을 수 없었던 것들을 전력계업체들이 손에 넣기 시작했다. 바로 NTT에 밀리지 않는 조직력, 인지도, 자금력 등이 그것이다.
전력계업체들은 또한 NTT에 필적하는 광섬유망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광섬유를 이용한 브로드밴드 통신서비스가 궤도에 오르면 아직 통신사업에 한 발만 담그고 있는 지역별 전력업체들도 FTTH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다. 실제 광섬유에 의한 브로드밴드 서비스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6월말 기준 가입자수(총무성 집계)가 전월대비 34.7% 늘어난 6만8000명을 기록했다.
도쿄전력이 주도하고 있는 ‘NTT 대항 세력’ 만들기가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전력업체는 특성상 지역별 업체기 때문에 따로 떼어놓고 보면 미미하다. 따라서 10개 전력업체가 하나로 힘을 모아야하는데 전력업체간 뿌리깊은 라이벌 의식이 장애물이다. 이미 도쿄전력이 주도하는 모양새를 못마땅해하는 다른 전력업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NTT 대항 세력’ 구상은 지난 87년에도 한차례 있었으나 결국 해당 업체간 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실패한 전례가 있다.
<도쿄 = 성호철 특파원 hcs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