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의 발빠른 행보에 가장 당황해 하는 곳은 휴렛패커드(HP)다. 창업자 일가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3일, 컴팩컴퓨터와의 합병을 완성시킨 HP가 그렇게도 컴팩과 한몸이 되고자 했던 이유는 바로 현금박스이자 황금광맥이라고 불리는 IT서비스 분야 사업 강화 때문이다. 합병전 HP와 컴팩은 세계IT서비스 시장에서 각각 5위와 7위였는데 합병으로 일약 3위로 뛰어올랐다. 당시 리버 모어 HP 부사장은 “전세계에 6만5000명의 서비스 인력이 활동하고 있다”며 “최대 서비스 시장인 미국을 위시해 유럽·일본 등 각지에서 컴팩과의 합병 시너지 효과로 인해 IBM을 급속히 따라잡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HP는 지난 2000년에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를 인수하려다 너무 많은 인수 금액 때문에 이를 백지화한데 이어 최근 일년간에도 PwC와 수차례나 접촉하며 PwC의 컨설팅 부문 인수를 시도한 바 있어 더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 형편이다.
기업체에 컴퓨터 시스템을 구축·관리, 혹은 기업의 각종 전산 시스템에 대해 컨설팅을 제공하는 IT서비스는 개인용컴퓨터와(PC)와 중대형 컴퓨터(서버) 그리고 애플리케이션 등 각종 소프트웨어까지도 함께 판매할 수 있어 컴퓨터업체들에 매우 짭짤한 사업이다. 특히나 세계경기 침체의 직격탄으로 기업들이 하드웨어(컴퓨터) 구매를 줄이고 있고 또 이의 여파로 하드웨어 분야가 극심한 저가 경쟁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지금 수익성이 높은 서비스의 중요성은 보다 커지고 있다.
세계적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 데이터퀘스트가 상반기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 한해 세계 IT서비스 시장 규모는 작년보다 2.8% 늘어난 5570억달러를 형성하는데 이어 3년후인 오는 2005년에는 7000억달러선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이 때문에 HP를 비롯해 현 2위 업체인 일렉트로닉데이터시스템스(EDS),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델컴퓨터 등 주요 컴퓨터업체들은 그간 사운을 걸다시피하며 시장 각축을 벌여 왔는데 이번에 IBM의 몸집이 보다 비대해짐에 따라 이들 후발업체는 바짝 긴장하면서 현재의 ‘파이’와 미래의 ‘먹이’를 걱정하며 대응책 마련에 발걸음을 빨리 하고 있다. 후발업체들은 더욱 강해진 IBM을 맞아 파트너십(제휴) 확대와 함께 틈새시장, 즉 IBM의 PwC 선택으로 딜로이트 등 다른 대형 컨설팅업체들은 오히려 IBM 제품보다 자사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며 이 틈을 파고들 예정이다.
HP는 이미 5대 컨설팅업체 중 한 곳인 액센추어와 협력을 맺고 있는데 IBM의PwC 인수 발표가 있던 날, HP의 서비스의 마케팅 부사장은 “우리는 컨설팅업체를 인수하기보다는 제휴관계(파트너십)을 통해 서비스 사업을 강화 하길 원한다”며 PwC 인수 실패에 대한 회한과 자사의 전략을 밝혔다. HP는 올 6월말에 딜로이트와도 파트너십을 맺으며 “양사가 이미 9000만달러에 달하는 서비스 계약을 따냈다”고 밝혔다.
또 파트너십 전략은 세계 최대 유닉스 서버업체인 선이 서비스 사업 확대에 있어 가장 애용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선도 딜로이트와 동맹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작년 12월에는 PwC와 협력의 손을 잡기도 했다. 당시 선과 PwC는 양사 고객을 상대로 서로의 제품과 컨설팅을 홍보 및 판매해주기로 합의, 경쟁상대이던 IBM을 압박하기도 했었다. 선은 딜로이트와 PwC 외에도 캡제미니언스트앤드영컨설팅과 IT 서비스 시장 서열 2위인 EDS와도 동맹을 맺고 있어 컴퓨터업체 중 가장 적극적인 파트너십에 나서고 있다. 델컴퓨터도 세계 2위 개인용컴퓨터라는 명성을 발판으로 그간 서비스 사업 확대에 나서왔는데 앞으로 세계시장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임에 따라 생존 차원에서 보다 강화된 파트너십 전략과 고객 서비스 향상에 나설 전망이다. 경기 침체에 따른 주요 사업 부진으로 지난 분기 순익이 큰 폭으로 줄어든 EDS도 통합HP의 출범 이후 2위 자리에 위협을 느껴왔는데 이번 IBM의 깜짝 발표로 보다 우수한 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일루미네이트의 애널리스트 조너선 유니스는 “IBM의 PwC의 인수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델컴퓨터·HP·EDS 등과 같은 서비스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업체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결국 어느 업체가 기업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만족하게 제공하는냐에 따라 업체간 희비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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