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미디어 대기업 베르텔스만이 토머스 미델호프 최고경영자(CEO·49)의 전격 퇴진으로 그동안 적극 추진해 온 해외진출, 인터넷 지향정책, 기업공개계획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델호프 CEO는 최근 한달 사이에 미디어 대기업에서 퇴출된 3번째 고위 중역이기도 하다. 그에 앞서 장 마리 메시어 비방디 CEO와 AOL타임워너의 2인자였던 로버트 피트먼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사임했다. 비방디와 AOL타임워너는 베르텔스만보다 인터넷에 더 주력해온 회사이며 퇴진한 두 사람은 기존 전통적 미디어와 인터넷의 접목을 적극 시도해온 인물들이었다.
미델호프 CEO는 베르텔스만을 지배하는 창업자 가문인 몬가(Mohn family)와의 갈등으로 사임했다. 그는 비방디유니버설과 AOL타임워너 등 경쟁사와 마찬가지로 경영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167년의 역사를 가진 TV, 출판, 음악 대기업인 베르텔스만이 구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합하도록 적극 유도했다. 주식상장과 미국식 기업문화 수용을 적극 추진해온 미델호프 CEO의 정책은 그간 회사 내부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아왔다. 베르텔스만은 미 최대 출판사 랜덤하우스 (Random House), 음악 대기업 BMG엔터테인먼트를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미델호프 CEO가 사내 소규모 사업체를 경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 갈등을 조장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오랜 역사의 베르텔스만은 전통적으로 소규모 사업부문에 독립성과 자율성을 많이 부여하고 우호적인 노사관계 유지에 특히 신경을 쓰는 기업이다. 도르트문트에 있는 포마트인스티튜트의 미디어 전문가 호스트 뢰퍼는 특히 미델호프 CEO가 지난달 과학출판사를 매각하겠다고 제안한 것을 예로 들면서 “이 제안이 사내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미델호프 CEO의 일사천리식 전략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반대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고 해석했다.
지난 98년 CEO에 올랐던 미델호프 CEO는 유럽 최대 TV방송사 RTL을 인수하고 음악공유 서비스업체 냅스터와 제휴하는 등 공격적인 거래꾼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 회사는 2000년 AOL 유럽 지분의 49%를 68억달러에 매각하고 유료 TV벤처 키르히그룹에서 파산 전에 손을 떼는 등 운도 따라주면서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었고 현금보유고도 늘어났다. 베르텔스만 주식의 4분의 3은 창업자의 5대손인 라인하르트 몬(81)이 이끄는 재단을 통해 몬가가 지배하고 있다. 이 회사는 대주주인 그룹 브룩셀레스램버트가 소유한 지분 25.1%를 오는 2005년까지 일반에 주식 공모시킬 계획이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지는 미델호프 CEO가 주식공모를 더욱 확대하고 반대로 창업자 가족 지분을 더 줄이려다가 몬가와 마찰을 빚었다고 보도했다.
처음 성경책 인쇄를 위해 설립된 베르텔스만의 주식상장은 주주가치 개념의 도입을 의미한다. 하지만 주식이 상장되면 비용감축과 감원이 잇따를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뢰퍼 미디어 분석가는 “베르텔스만은 스스로를 사회적 유대관계와 근로자와의 유대관계를 중시하는 가족기업으로 여겨왔다”고 진단했다. 쥐드도이체 자이퉁지도 미델호프 CEO의 퇴진을 ‘문화충돌’로 표현했다. 미델호프 CEO가 추진해온 2∼3년내 기업공개 정책과 앵글로색슨식 주주문화가치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맞부딪쳐 폭발했다는 해석이다. 시장조사회사 포레스터리서치 레베카 울프 수석분석가는 “베르텔스만이 미델호프 CEO의 퇴진 전에 순수 인터넷지향 사업모델을 지양하고 있었다”며 “베르텔스만은 지난 6∼9개월 동안 닷컴을 약간 멀리하고 온라인사업을 기존 브랜드를 지탱하는 한 방식으로 여기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한편 미델호프 CEO 후임으로는 아바토 인쇄 및 미디어 서비스부문 책임자인 군터 틸렌(59)이 선임됐다. 틸렌은 창업자 가문이 운영하는 재단 이사장 자리를 라인하르트 몬의 부인인 리즈 몬에 넘길 예정이다.
<박공식기자 kspark@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