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동공단의 전자부품 중소업체인 D사는 최근 연구소 연구원 10명 중 3명이 한꺼번에 대기업으로 빠져나가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차세대 전략제품을 개발하던 D사의 사장과 연구소장은 핵심 역할을 하던 연구원들을 한꺼번에 잃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월급도 많고 사회적 지위도 향상되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연구원이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1∼2년 전부터 대기업의 인력수급 방침이 대규모 신입사원 공채에서 경력사원 수시모집으로 바뀌면서 중소기업의 우수 연구인력 빼가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대기업의 인력 스카우트는 서운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D사의 연구소장은 “연구원들이 대기업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알아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요즘에는 대학을 직접 돌아다니며 교수들을 만나 쓸 만한 기술개발 인력을 충원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업무가 됐다”고 하소연한다.
산업단지의 중소기업 기술연구소장들은 한 목소리로 “대기업이 3∼4년간 키워놓은 인력을 손쉽게 빼가면 중소기업은 어떻게 연구개발을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숨짓는다.
문제는 애써 키워놓은 연구인력을 대기업에서 스카우트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막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산업자원부는 부품·소재 정부지원제도를 통해 중소기업 기술인력난을 해소해주려 하지만 정작 중소기업들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별 효과가 없는 정부의 정책에 의존하지 않고도 중소기업의 기술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없을까.
중소기업들은 자금과 인력이 풍부한 대기업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인력 스카우트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손쉽게 보완하려는 방법에서 벗어나 중소기업과 공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뿌리는 바로 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뿌리를 스스로 잘라내는 어리석음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것이 글로벌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참다운 지혜가 아닐까.
<산업기술부·손재권기자 gjac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