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정부가 주도해온 암호기술 개발이 민간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미국·유럽·일본 등이 공모를 통해 암호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정부주도가 아닌 민간주도의 암호기술 개발은 시대의 흐름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암호기술 개발사업을 민간주도형으로 바꾼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미국 국가표준연구소(NIST)는 블록 암호 알고리듬인 DES(Data Encryption Standard)의 표준기한이 만료되자 98년에 공모사업을 통해 차세대 128비트 표준 블록 암호 알고리듬 개발 프로젝트인 ‘AES(Advanced Encryption Standard)’를 민간주도로 추진하고 있다. 유럽도 미국의 AES 프로젝트에 대응해 지난 2000년 1월부터 민간주도의 ‘NESSIE(New European Schemes for Signatures, Integrity and Encryption)’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일본은 지난 2000년부터 올해까지 2년 일정으로 민간이 중심이 된 정보기술진흥위원회(IPA)를 주축으로 CRYPTREC(CRYPTography Research and Evaluation Committee)’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이런 국제적인 추세를 반영해 차세대 암호기술 개발을 ‘공모’를 통한 민간주도형으로 전환키로 하고 우선 대학교수·연구소 등의 암호기술전문가들로 구성된 암호기술공모사업 계획수립반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암호기술공모사업 계획수립반은 민간주도의 차세대 표준암호기술 공모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기본계획을 마련하며 표준암호기술공모사업의 구체적 내용과 일정을 담은 최종계획안은 오는 10월경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정부의 이같은 계획이 차질없이 추진될 경우 그동안 패쇄적으로 개발돼온 암호기술은 공개검증을 받게 된다. 이는 암호기술에 대한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암호기술의 사용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번 암호기술공모사업 계획수립반의 활동이 단지 계획을 수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간이 주도하는 표준암호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디딤돌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
이번 암호기술 개발이 성과를 극대화하려면 민간기업의 참여를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현재 10여명의 암호기술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암호기술공모사업 계획수립반에 민간기업의 전문가들을 대거 참여시켜 계획수립에서부터 민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암호기술이 컴퓨터의 성능향상이나 예기치 않은 해독기술의 개발 등으로 일거에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차세대 암호기술개발 능력을 갖춘 민간기업의 참여를 확대하는 일은 사업성패의 관건이 될 수 있다.
또 우리가 개발한 암호기술이 국제표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이 99년 2월 개발한 국산 표준 알고리듬인 SEED가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정보통신 표준활용도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인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아 국제표준 암호기술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이번에 공모를 통해 민간주도로 개발될 암호기술은 국제표준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민간주도로 암호기술을 개발한다고 해서 정부의 역할이 축소돼서는 안된다. 정부는 민간주도의 표준암호 개발 후 암호이용을 활성화하고 암호역기능을 방지하기 위한 법과 제도적 정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