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섭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mslim@hslab.chonbuk.ac.kr
언제 어디서나 누구하고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동통신의 편리성은 공중전화 박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을 먼 과거 속으로 옮겨버렸다.
음성만이 아니라 컬러 영상통신도 가능하고 ‘모바일(mobile)’로 대변되는 새로운 사무환경은 물론 엔터테인먼트와 금융결제 등도 말 그대로 ‘움직이는 시대’가 됐다.
전체 인구의 65%가 넘는 3000여만명이 이동전화단말기를 손에 쥐고 다니는 이같은 생경한 환경이 급작스레 도래하기까지는 몇차례의 대형 이벤트가 있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차세대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이 바로 그것이다.
동기식·비동기식 등의 어려운 얘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동통신은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부각됐고, 선정된 사업자와 그렇지 않은 사업자간에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IMT2000 사업의 움직임을 보면 마치 어떤 거대한 벽에 부딪힌 것 같은 느낌이다.
사업자는 “사실상 중복투자나 다름없는 전국망 기지국 시설투자가 부담스럽다” “신규 수요 확대에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 등의 말들을 되풀이하며 서비스를 차일피일 연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을 믿고 장비와 부품을 개발해온 협력업체들은 회사의 존폐를 걸고 탈출구를 모색해야 할 지경이다.
도대체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 우리 모두가 방향타를 잘못 잡고 있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생각이다.
IMT2000의 경우 영상 송수신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도록 돼 있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이 그 많은 비용을 투입하고 이를 활용할 것인가를 놓고 보면 회의적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영상통화를 한다는 신기한 마음에 몇번은 만족하겠지만 현재의 콘텐츠나 서비스 수준 등을 생각해보면 투자 대비 효용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현재 준비하고 있는 차세대 이동통신기술 개발 방향을 과유불급한 데이터 전송속도를 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더 빨리 상용화가 가능하고 효용성이 높은 부가기술을 개발하는 쪽으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든다면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이나 무선 랜(LAN) 등을 기존 이동통신망과 연결하는 작업도 세대가 바뀌는 중간 단계에서는 상당히 효과적인 응용 기술임에 틀림없다.
GPS의 경우 ‘E-911’ 등 북미지역 수요도 있고 여타 부가 서비스도 가능해 현재의 정체 현상을 뚫을 새로운 시장으로 여겨진다. 또 무선랜은 모바일 오피스는 물론 교육용 무선 단말기 등으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어 시장이 무궁무진하다.
또 핵심 부품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신축성 있는 디스플레이나 초장기 사용이 가능한 휴대형 전지 그리고 저전력 고집적의 고속 데이터 전송회로 ASIC에 대한 개발이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차세대 이동통신의 정체성을 놓고 방황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각종 응용기술로 한국의 이동통신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는데 ‘차세대’라는 환상에 싸여 종이 위에만 남는 연구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의 주역은 지금과는 다른 분야에서 발굴해야 한다. 새로운 황금어장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냉철하게 우리의 대내외적인 역량을 분석하고 어떻게 준비하고 키워나가야 할 것인지를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할 때다. 먼 미래 때문에 현재와 가까운 날들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해서도 안된다.
이동통신 강국, 한국의 재도약을 위해서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