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세계 통신시장 침체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 기간중에 실직한 통신업계 종사자만 45만명을 헤아린다. 또 지난해에는 평균 6일마다 1개 네트워크 서비스 업체가 문을 닫았다. 같은 기간 세계 통신기업들의 가치(시가총액)는 1조달러(약 1200조원)가 빠져나갔다. 세계 통신업계의 경기회복은 2003년까지는 어렵고 오는 2004년 또는 2005년까지 휴식을 취해야 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최근 통신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가트너그룹은 그 이유를 각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서 찾고 있다. 미국은 통신분야에서 무리하게 경쟁을 도입하다 망했고 유럽연합(EU)은 각국 정부가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가 실패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가트너그룹은 대안을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서 찾고 있다. 이 회사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Asia/Pacific’s Role in Telecom Reguratory Maturity)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은 지난 97년 경제위기를 겪은 후 시장개방 및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세계 시장에 편입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통신분야에서도 정부로부터 규제완화 등의 작업이 착착 진행됐다.
한국과 싱가포르에서는 인터넷 등 정보기술(IT)관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네트워크 서비스에 자본을 배분하고 통신분야에서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데 주력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를 위한 법률을 살펴보면 시내전화용 PSTN을 비롯해 기업용 네트워크 데이터(트래픽) 처리, 장거리 및 국제 전화사업 분야에서 경쟁 입찰을 위한 법규는 이미 성숙해 있다.
특히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모바일 및 데이터 통신 시장은 벌써부터 통신서비스 사업자들간에 엄청난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개입찰을 통한 정부의 주파수 할당은 유럽의 모바일 시장을 마비시켰지만 아시아 각국은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권을 직접 인·허가하는 방식을 채택해 이통(모바일) 시장을 활성화시켰다.
또 최근 신흥 사업자들과 기존 사업자들의 VoIP 판매는 한 국가의 경쟁력을 재는 척도가 되고 있다.
국가에서 후원하는 광대역 네트워크와 기반 네트워크 인프라 사업자 그리고 이들의 경쟁업체간의 구분은 아직도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특히 중국·인도 등 아시아 중심 국가들의 경우 국가 입법 기관의 역할에 대해서 서구 각국에서 만큼이나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같은 논리로 통신업종의 구조적 문제들이 해결됐다는 최근의 시각은 모든 기업들의 경쟁 심화 그리고 최소한 모든 커뮤니케이션(신문·TV 및 통신) 업계가 단일한 종합적 원칙을 갖게 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급속하게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러한 논쟁을 정부와 네트워크 서비스 제공업체 그리고 서비스를 소비하는 기업(개인 포함)으로 좁혀서 정리해보자.
◇정부=정부는 먼저 법규상의 성숙도와 광대역 정책의 효율성에 대한 자국의 등급을 검토해야 한다.
통신산업에 대한 국가적 접근 방식에 대한 성찰은 뜨거운 주제가 되고 있다. 세계적 트렌드는 기업 경쟁을 감시하는 ‘모든 업계를 총괄 관리하는 강력한 중재자’로서의 정부 역할을 선호하는 것이지만 커뮤니케이션 및 통신에 대한 독립적인 공공분야의 감시 위원들과 전문 감수자들의 역할과 가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최근 세계 각국은 시장에서 엄청난 실패를 경험하면서 통신분야를 재조정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네트워크 서비스 공급업체(반송파 사업자 및 ISP)=2004년까지 자본 지출을 연기할 것이다. 광대역 서비스와 같은 새로 부각되고 있는 서비스를 위한 최적의 투자효율을 얻고자 하는 반송파 사업자들은 디지털 세계에 하루 빨리 다리를 놓기 원하는 정부와 사회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들의 딜레마는 동선 네트워크(구식 네트워크)와 PSTN 음성 서비스를 통한 그 동안의 수입과 마진이 향후 5년간 급속하고도 예측 불가능한 속도로 위축될 것이라는 데 있다. 이들이 해결해야 할 주요 도전으로는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이전 속도를 평가·예상·통제하고 선택한 수준의 기술 이전 속도를 홍보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들이 역점을 두어야 할 분야는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시장이다.
◇기업=이상적인 대역폭과 초고속 통신을 제공하는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을 요구하고 있다. 백본 네트워크 가용성 측면에서는 기업으로 들어오는 회선의 95% 이상 백본망이 설치돼 있는 곳에서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또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주파수분할다중화(coarse-grade wave division multiplexing) 등의 신기술을 이용하면 10㎞에서 20㎞의 거리에서 중계장치 없이도 저렴한 가격으로 기가비트 이더넷을 제공하고 있다.
국가 및 대륙 사이에서의 기가비트 이더넷 속도 구현 기술도 최근 많이 소개되고 있다.
이들 서비스는 2006년이 되면 비용 면에서 대부분의 기업이 이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가트너그룹은 2004년 이전까지는 기업들이 광대역을 사용하는 게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점은 다국적 통신 사업자들이 가상 사설망을 위한 백본 네트워크와 앞선 IP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기업들은 동일 수준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도입할 수 없을 것임을 의미한다.
이 대목에서 전략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들은 우선 광대역 서비스를 희귀 자원으로 간주하고 도입을 서두르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관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예산 할당, 기술 보급, 우선 순위 배정 등에선 적극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 관심을 집중시켜야 한다.
이제 아·태 지역 국가별 광대역 도입현황 등을 살펴본다.
◇한국=광대역 서비스 보급에서 세계 최고 모범 국가다. 올해 말이면 전체 가구 중에서 광대역 보급률은 무려 20%에 달할 전망이다. 한국은 케이블 TV 네트워크를 광대역 통신망으로 활용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승자(an accidental brodband leader)’가 됐다.
그 이유를 분석하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예:CDMA 기술개발 및 보급)을 받으면서 광대역 서비스 보급은 세계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다. 또 통신 관련 법규도 이제 완전 경쟁하는 체제로 이전해나가고 있다.
이로 인해 네트워크의 서비스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광대역 서비스를 활용한 사업 측면에서는 아직 잠재력을 충분하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옥의 티’로 꼽힌다. 오히려 미국·캐나다 및 선진 유럽 국가들은 전자상거래를 보다 잘 이해하고 있고 이를 보급하는 데에도 앞서 있다.
◇홍콩=법규상 완전 경쟁 시장을 선호하며 통신도 예외가 아니다. 아시아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광대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싱가포르=97년부터 광대역 서비스를 도입을 시작했다. 정보통신개발부가 중심이 돼 인터넷 등을 통해 원격 교육 및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에 정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외국인 투자유치 환경은 열악하지만 최근 많은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광대역 서비스의 사용은 신규 사업자들이 NTT 광대역망을 활용하고 ADSL 접속 및 서비스와 상호 연계를 추진하면서 급속히 늘고 있다.
◇대만=처음 반송파 사업자로 출발한 청화(Chung Hwa)는 급성장하고 있는 이통(모바일)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자 최근 광대역 서비스 시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호주=광대역 시장에 매우 늦게 진출했으며 따라서 아직 보급률도 낮은 상태다. 텔스트라(Telstra)는 다른 국가들이 5년 전에 극복한 초고속 망 배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
◇뉴질랜드=인구 300만명이 지방과 시골 지역에 분산돼 있는 등(싱가포르의 경우 동일 인구가 도심에 집중돼 있다) 광대역 서비스를 보급하는 데에도 엄청난 투자자금이 드는 과제를 안고 있다.
◇말레이시아=너무 많은 벤더들이 난립해 있어 수익성이 떨어지고 또 이들의 자본규모도 영세하기 때문에 업체들간 통합이 진행중이다.
◇중국=한마디로 ‘잠자는 거인’이다. 중국은 기존은 저속 네트워크를 건너뛸 전망이다. 2005년경이면 모바일분야에서 그랬듯이 광대역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낮은 소득 수준 때문에 소비자들이 광대역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투자할 여력이 없다.
◇인도=중요한 통신업계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인도인들은 국가 기간 망 매설이 진행중인데도 불구하고 통신망 개방문제를 둘러싸고 업체들간 대립이 극한을 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2004년까지는 대부분이 네트워크 서비스에 만족하기 힘들 것이다. 또 광대역 서비스 사용할 수 있는 곳도 일부 도심의 빌딩·공단 및 금융 센터와 같은 지역으로 한정돼 있다.
◇인도네시아=경제 회복에 따라 신규 서비스에 대한 모든 전망이 가능하지만 실현에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