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세계 최고를 위한 자세

 ◆김형태 한국 EXE테크놀로지 사장 ht_kim@exe.com

 지난 상반기 국내 IT솔루션 업체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실물경제가 호황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회복 국면을 맞고 있으나 기업들의 IT투자는 축소 정체됐기 때문이다.

 실제 14개 국내 대기업의 현금 보유액이 지난해 말 10조9000억원, 6월말 16조5000억원으로 무려 51%나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IT투자에는 찬 바람만 일었다. 한국은행도 3월말 현재 우리 기업들의 금융자산이 513조원에 달해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고 발표, 돈은 풍부하지만 IT투자는 보류하는 경향을 방증했다.

 우리 기업들은 IMF를 겪으면서 유동성 확보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꼈다. 따라서 나름대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기업들은 올해 1, 2분기에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거둔 반면 설비투자에는 인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급변하는 국제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원활한 현금흐름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나친 현금보유는 오히려 미래의 성장 원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으며 원화강세를 부채질할 수도 있다. 이는 곧 수출주도형인 우리 경제구조를 감안할 때 기업의 흑자감소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즈음에서 투자나 현금보유에 대한 선순환적인 사고를 해 볼 필요가 있겠다. 많은 경영관리지표들이 우리 기업들의 눈을 현혹한다. 하지만 그 수치의 기준이 무엇인가하는 점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관련 수치들은 세계적인 우량기업들의 경험적 수치를 평균화한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선진 우량기업의 표준수치에 경영지표를 맞추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는 셈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 기업들의 현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기업들은 기업경영과 관련한 여러 부문에서 이미 글로벌 표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생산부문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해도 될 것이다. 단 물류, 금융 등 후방의 지원부문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고생을 해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라섰으나 막상 그 이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만 그간의 성과를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 기업들은 늘 벤치마킹을 해야만 하며 다른 글로벌 기업의 사례가 없으면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품의를 얻기가 힘들다. 새로운 프로세스 아이디어에 대한 모험적인 실행이나 평가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또 한번 도약하기도 어렵다.

 실제 일본은 구미의 선진시스템을 모방하고 변형시켜 세계 최고의 프로세스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 이후의 새로운 글로벌 경쟁체제에 걸맞은 투명한 협업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데 주춤거렸다. 그 결과, 미국의 글로벌 토털 프로세스적인 접근에 경쟁우위를 잃고 지난 10년간 고전하고 있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구조적인 불황으로 헤매고 있으며 미국은 경기의 불확실성과 10년 이상의 장기호황에 따른 경기순환적 위기의식으로 말미암아 신규 투자나 공격적인 경영을 감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글로벌 기업들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보다 효율적인 관리시스템과 지속적인 수익원을 개발하기 위해 글로벌 표준 공급망관리(SCM) 체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물류 프로세스를 개선하며, 인적자원에 대해 끊임없이 투자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정보기술(IT) 인프라를 다시 구축하는 게 당면과제다. 다만 그러한 일들을 추진해 나감에 있어 더 이상의 선진 모델이나 벤치마킹 대상이 없다는 점을 각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