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되는 세계적 경기침체로 유럽 굴지의 IT업체들이 자금난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독일 헨델스브라트는 최근 세계 각지의 투자은행과 자체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독일의 인피니온이나 엡코스 같은 유럽의 우량 기술업체들조차 조만간 자금난에 봉착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제품판매가가 생산비에도 못 미치면서 유럽 IT기업의 자금유출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CSFB(Credit Suisse First Boston) 투자은행은 내년도 인피니온의 자금수지가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인피니온의 주력 상품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의 판매가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생산비를 밑돌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 2000년 20억유로를 상회하던 인피니온의 현금자산이 불과 일년 만에 2억유로 수준으로 급감한 것을 감안하면 이런 분석이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납득할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 신용평가기관인 S&P(Standard & Poors)의 전망은 더욱 어둡다. 최근 이 기관은 프랑스의 대표적 통신장비업체인 알카텔과 스웨덴의 에릭슨이 발행한 회사채를 ‘정크본드’로 분류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업체의 수익성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수익성 악화에 따른 기업의 유동성 부족이 더욱 우려된다는 분석에서였다.
유럽의 IT업체 가운데 자금수지 측면에서 가장 우려를 자아내는 기업들은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들이다. CSFB는 T-온라인·티스칼리·테라라이코스 등 유럽의 대표적 ISP 모두가 내년에도 지속적인 순자금유출 문제로 고전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더욱이 이들의 모기업인 거대 통신업체들이 최근 과다 부채문제로 고전하면서 산하 ISP들에 대한 자금지원을 줄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자금사정이 의외로 악화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유럽 IT기업들의 자금흐름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투자은행들과 신용평가기관들의 유럽기업 평가기준도 수익성과 함께 현금자산 보유비율을 더욱 중시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S&P가 유럽기업의 회사채 등급 평가시 이용 가능한 기업의 현금자산 크기에 큰 비중을 두겠다고 발표한 것이나 이를 배경으로 독일의 지멘스가 내년도부터 현금자산 증대를 기업경영의 주요 목표로 설정하겠다고 발표한 것 등이 그 좋은 예다.
상당수 유럽의 경제 전문가들은 지난 몇 년간 유럽의 IT경기 침체에 대해 곧 회복될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놓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최근 들어 점차 비관적으로 바뀌는 느낌이다. 유럽의 IT붐을 이끌던 통신업체들이 과다채무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고 기대했던 3G 이동통신시장도 논란이 그치질 않는데다 무엇보다 IT관련 제조업체들의 수익이 점차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보도된 유럽 IT기업의 자금흐름 문제 역시 이런 비관적 전망의 한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