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81년 소프트웨어 유통사업으로 첫발을 내딛은 이래 시스템 통합(SI), 벤처 인큐베이팅, 광대역 인터넷 분야 등으로 사업을 확장, ‘IT발전소’라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은 물론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주름잡았던 소프트뱅크가 최근의 일본 경기침체와 증시하락 속에서 각종 합작사업마저 부진,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소프트뱅크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닷컴 거품 붕괴에 있다. 야후를 비롯해 세계 600여 유망 인터넷 기업의 주식 5% 이상을 확보하고 있지만 인터넷 시장에 바람이 빠지면서 이 수치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여기에다 일본 경제가 침체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소프트뱅크는 설상가상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닷컴 거품이 꺼진 기미가 완연한 지난 2001회계연도 소프트뱅크는 888억엔이라는 기록적인 적자를 냈다. 366억엔이나마 순익을 올렸던 2000회계연도와 비교되는 수치다. 2001회계연도에는 매출도 4050억엔으로 회사 총자산이 1조1000억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소프트뱅크의 버팀목이었던 주식평가 이익이도 가장 좋았던 5조엔에 비하면 거의 10분의 1수준까지 하락한 상태.
이런 가운데 나온 나스닥재팬의 영업활동 중단 발표는 소프트뱅크의 환부가 업계의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나스닥 재팬의 자본금은 초창기 6억엔에서 7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부채규모는 자본금 규모를 훨씬 능가, 지난해 말 현재 누적적자가 52억엔(4437만달러)에 달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로서는 그나마 현금을 취할 수 있는 확실한 루트로 여겨지던 아오조라 은행 지분 매각마저 일본 정부의 만류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침체 속에서 증자나 사채발행, 보유주식 매각이나 투자업체의 신규상장에 따른 자금조달 등이 모두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일본 IT업계에서는 회생기미를 보이지 않는 일본증시 현황 속에서 나스닥재팬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회사에 무리가 된다는 판단에서 소프트뱅크가 나스닥재팬을 포기키로 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 회사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 사업을 벌려놓은 상황에서 나스닥재팬의 포기만이 나머지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소리가 제기된 바 있다.
이로써 난국에 빠진 소프트뱅크에 부활을 위한 확실한 무기로는 광대역 서비스 ‘야후BB’밖에 남아 있지 않은 셈이 됐다. 다행히 ‘야후BB’ ADSL서비스는 지난해 9월에 개시한 이래 가입자 수가 크게 늘어나며 사업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후BB는 아직도 투자가 더 많은 사업이라는 게 중론이다. 미쓰비시증권의 애널리스트 이즈미 지로는 “야후BB는 아직도 투자가 더 돼야 한다”며 “소프트뱅크로서는 더 많은 자산을 처분해서라도 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좇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어쨌든 소프트뱅크는 미국·일본·유럽을 잇는 세계 24시간 거래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원대한 야심’을 접고 광대역 인터넷 분야에서 ‘실익’을 취하기로 했다. 이 전략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세계 IT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