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미국-CEO연봉은 `무풍지대`

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CEO)가 자사 재무제표에 대해 CEO로서 책임을 지겠다고 서명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이로써 실리콘밸리 CEO로서는 가장 먼저 새로 마련된 CEO의 재무제표 서명 의무 규정에 동참했다. 그가 자사 재무제표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서명했으니, 이제 그의 거액 급여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기업 중역들의 급여를 따지고 들면 특히 기업 먹이사슬의 최정상에 선 CEO 급여가 현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기업 회계부정의 영향으로 제약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우선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CEO 급여가 기업 회계부정 영향을 받아 줄어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CEO 급여는 한마디로 ‘무풍지대’와 같다.

 유명 법률회사인 텔렌라이드앤드프리스트의 급여 전문가인 벤 딜랜시 중역은 “유능한 인재를 뽑고 유지하기 위해선 급여를 충분히 줘야 한다는 인식이 기업 사이에 뿌리깊이 박혀 있다”며 “이런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가지 변한 게 있다면 그것은 과다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지급됐던 스톡옵션이 예전의 CEO 고용계약의 ‘백미’를 장식했으나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개발도상국 1개 국가를 먹여 살릴 정도로 많은 돈을 챙겨 나가는 CEO들이 주가폭락과 스톡옵션의 비용처리 추세로 갈수록 줄어들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CEO들이 손해를 보진 않을 게 분명하다.

 엘리슨 CEO의 경우 그는 지난해 연간 급여로 역사상 어떤 기업가보다 많은 7억600만달러의 거액을 챙겼다. 이 급여는 엘리슨 CEO가 오라클의 매출목표 미달 발표로 주가가 폭락하기 수주 전 수백만주의 스톡옵션을 행사해 얻은 차익이었다.

 엘리슨 CEO는 정기급여 대신 4000만주의 옵션을 받았기 때문에 오라클의 실적과 관계없이 늘 두둑한 보수를 챙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라클은 지난해 엘리슨 CEO 소유의 항공기 임대회사 윙앤드어프레어에 100만달러 정도를 일종의 보너스 차원으로 지불하기도 했다. 지난해 거액 급여를 받은 베이지역(샌프란시스코만 주변 실리콘밸리) CEO는 물론 엘리슨만이 아니다. 스톡옵션 행사로 1억7500만달러 정도를 챙긴 시벨시스템스의 토머스 시벨 CEO나 1억5000만달러 이상의 급여를 받은 JDS유니페이스의 조지프 스트라우스 CEO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급여는 1년 일한 것 치고는 분명 적지 않은 금액이다. 딜랜시는 “기업들이 업계 최고의 경영자들에 대해 그에 걸맞은 최고의 급여를 주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있다”며 “유능한 경영자는 프로선수와 비슷하다”고 해석했다.

 이 같은 시각에서 본다면 알렉스 로드리구에즈 선수가 텍사스레인저스 야구팀에서 10년 동안 뛰는 조건으로 2억5200만달러를 받기로 계약한 것과 엘리슨 CEO가 7억달러를 번 것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법률회사 브로벡플레저앤드해리슨의 급여 전문 중역 커크 말도나도 CEO 급여가 앞으로 수개월 안에 급감할 것이라고 전망할 근거는 전혀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업 실적이 좋을 경우 중역들에 대한 급여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며 실적이 좋지 않을 때라 하더라도 중역들이 다른 회사로 옮기지 못하도록 많은 급여가 제공되곤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지적대로 에너지업체 PG&E는 지난해 자사 공공사업부가 파산상태임에도 불구하고 11명의 고위 중역들에게 정기 급여 및 보너스로 3000만달러 이상을 지급했다. 이 회사는 지난 1일 순이익이 71% 감소했다고 발표했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미 캘리포니아주의 지난해 1인당 평균소득은 3만3000달러 미만이었으며 이들 평균 소득자 대부분이 임금 근로자였다. 미 노동총동맹 산별회의(AFL-CIO: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nd 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s)는 블루칼라 노동자의 평균임금이 지난 80년 이후 지금까지 74% 인상된 반면 CEO 급여는 이 기간에 평균 1884% 급증했다. 이 같은 기업 중역들에 대한 급여는 최근 기업 회계부정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주 서명한 기업개혁법이 그 같은 변화의 출발점이다. 게다가 스톡옵션 비용처리 추세도 장기적으로 볼 때 스톡옵션 지급을 감소시킬 것으로 보인다. 스톡옵션을 ‘남발’했던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스톡옵션의 비용처리가 자사 순이익을 감소시킬 것을 우려해 이를 반대하는 로비를 적극 펼친 결과 기업개혁법에서 스톡옵션 비용처리를 제외시켰으며 이의 입법을 최대한 연기하려고 온 힘을 쏟고 있다.

 CEO가 높은 성과를 올린 데 대해 급여를 많이 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브로벡 말도나도 전문가도 “빌 게이츠 회장이 세계를 지배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일으켰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만한 보상을 받을 가치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게이츠 회장은 지난해 정규 급여로 전년대비 13% 인상된 49만5000만달러를 받았으며 스톡옵션도 전혀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개인 재산이 무려 540억달러에 달하니, 스톡옵션을 희생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게이츠 회장이 스톡옵션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올바른 길로 걷고 있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제이안기자 jayahn@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