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사태 이후 사실상 가전시장을 양분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과열경쟁이 최근 그 기세를 더해가는 듯하다.
쉽게 말해 두 회사의 마케팅·기획 담당자 주장을 반영할 경우 컬러TV·냉장고·에어컨·세탁기 등의 시장에서는 항상 전체 생산량보다 많은 허수가 생긴다. 분명 어느 한쪽이 오해를 하거나 과장하는 셈인데 고객이나 독자에게는 의아할 뿐이다. 내수담당 책임자들은 일부 언론보도에 일희일비하고 며칠 동안 시장점유율을 재확인해 보고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그리고 전략적 이름을 내세운 경품·할인행사 등의 판촉공세가 이어진다. 어느달 매출 실적이 상대편에 뒤진다 싶으면 유통점에 제품을 밀어냈다가 다음달 초 회수하는 사례까지 발생한다.
IMF 이후 양강체제를 구축한 두 회사의 이 같은 과당경쟁 양상은 오직 하나의 상대를 의식해 집중적으로 시장전략을 세우면 되는 상황에서 나타난 일이다. 이것이 과연 기업과 소비자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빅3 구도이던 가전3사 시장과 두 회사 주도의 현시장 질서를 볼 때 어떤 변화를 느낄 수 있을까.
무엇보다 ‘경쟁을 위한 경쟁’ 구도가 가속되는 듯하다. 이젠 더이상 두 회사를 제외한 여타기업은 마케팅 전략 마련 시 고려대상이 아니다. 두 회사는 사실 한 경쟁사만 넘어서면 시장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자연히 3%포인트 내외의 살얼음 격차를 보이는 품목에서조차 우위를 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경쟁결과가 기업에 더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당사자들은 부인하겠지만 올초 시작된 에어컨 예약판매로 시작된 경품판매는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확산일로다. 이는 수세와 공세인 품목에서 서로 우위를 주장하는 양측이 제품을 팔 때마다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김치냉장고·에어컨 경품판매만으로 두 회사가 입은 손실은 적어도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이란 추정까지 나오고 있다. 여타 후발 군소 제조그룹도 매출 확보를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이들의 전략을 따라갈 수밖에 없으니 그 또한 손해다.
게다가 소비자들도 기업에 휘둘린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엄청난 자금과 마케팅 파워로 무장한 두 회사가 만들고 주도하면 다른 기업들까지 대기업 마케팅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소비자 선택권은 업체 전략에 좌우된다. 물론 기업들이 최근 날로 좋은 제품들을 만들어내고 있어 논란의 여지는 있다. 하지만 살 생각이 없던 물건까지 추가로 얻는 소비자도 있다. 가전이 대표적인 소비지향적 제품이라고는 하지만 소비자가 시장경쟁에 따른 비효율적 소비전략의 희생자가 된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두 회사의 경쟁이 폐해만 가져온다고는 할 수 없다. 두 회사의 경쟁 결과 디지털TV의 세계적 강국이 되고 있으며 퇴조라는 가전산업 분위기를 일신했다. 10% 이상의 고수익 실현을 보여줬으며 세계 일류업체와 내수시장에서도 당당히 겨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LG의 총수가 말하는 세계 일류·일등주의가 반드시 ‘경쟁을 위한 경쟁’의 양상을 보이며 제살깎아먹기식 형태로 표출돼야 하는가 하는 점은 의문이다.
이재구 정보가전부 차장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