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버클리 박사과정 학생인 패트릭 이튼은 PC업체들에는 최신형 PC를 판매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고객이다. 그는 취미삼아 3년된 구형 컴퓨터인 400㎒ 셀러론 컴퓨터로 MP3 음악 파일을 모으고 CD를 구우며 디지털 사진을 친지들에게 e메일로 전송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반도체나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MP3 파일 수집과 CD 굽기, 디지털 사진 보내기 등의 컴퓨터 작업은 가장 빠른 최신형 컴퓨터로 해야 제맛이 난며 이튼처럼 구형 컴퓨터 이용자들에게 컴퓨터 업그레이드의 혜택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튼은 이같은 광고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이튼이나 이튼 같은 부류의 컴퓨터 이용자들은 구형 컴퓨터에 만족하고 있어 가까운 장래에 신형 컴퓨터를 구매할 생각이 전혀 없다. 사실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이제는 PC를 과거 어느 때보다도 오래 쓰고 있는 편이다. 바로 이점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 고속화에 박차를 가했던 인텔이나 AMD 같은 반도체회사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기반으로 컴퓨터를 제조·판매하는 휴렛패커드(HP) 같은 PC 제조업체들의 커다란 걱정거리다.시장조사회사 가트너데이터퀘스트의 찰스 스멀더스 분석가는 “PC 교체주기의 장기화는 PC시장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미국 PC시장이 포화상태기 때문에 PC 교체주기라는 개념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 소비자 대부분이 PC 최초 구매가 아닌 대체 구매를 해야 할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이튼은 “개인적으로 PC를 서둘러 교체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조금 더 빠른 프로세서를 사용하지 못한다고해서 애석하지도 않다”며 “고속 프로세서를 구매할 생각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잘라말했다.
인텔은 1년전 자사 최초로 2㎓ 펜티엄4 칩을 떠들썩하게 선보인 뒤 칩의 클록속도를 2.53㎓까지 높여 놓았다. 인텔은 올해말 3㎓ 칩도 내놓을 예정이다. 인텔의 숙적 AMD도 자사 칩 중에서 가장 빠른 칩의 속도가 1.8㎓기 때문에 수개월 내에 속도를 더 높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내놓기 위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칩만 빠르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존 제품을 능가하는 소위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나와야 PC 구매가 성황을 이룰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 같은 히트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2년전만 해도 MP3나 공전의 히트를 쳤던 무료 음악 공유 서비스 냅스터의 출현 그리고 기록 가능한 CD의 가격인하 같은 요인이 신규 PC 구매를 촉발시켰다. 특히 PC를 분해한 뒤 부품을 추가하는 작업을 꺼리는 소비자들이 당시 신규 PC 구매에 적극 나섰다. 이에 앞서 많은 PC 업체는 지난 98년과 99년 Y2K 문제로 인해 촉발된 신규 PC 구매 붐 덕을 톡톡히 봤었다. Y2K 이전에는 지난 95년 출시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95 운용체계가 PC 구매 열풍을 일으켰다. 윈도95는 그 이전 버전보다 훨씬 복잡해 소비자들은 펜티엄PC를 어쩔 수 없이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PC 구매 붐을 일으킬 다음 요인은 무엇일까. 일부 전문가들은 예전 윈도보다 많은 메모리 용량을 필요로 하는 최신 윈도XP 운용체계를 꼽았었다. 하지만 경기 둔화로 인한 소비자들의 구매력 감소로 윈도XP는 PC 교체 붐을 일으키지 못했고 그 결과 소비자와 기업의 PC 교체주기는 더욱 길어졌다. 스멀더스 분석가는 기업들의 PC 교체 주기가 예전 같으면 3년 정도 걸렸으나 이제는 4년에 육박하고 있는 데다 소비자들의 PC 교체주기는 4년에서 5년 정도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제이안기자 jayahn@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