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북의 경제개혁

 ◆김연철(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북한 경제정책의 변화가 시작됐다. 다양한 논란이 있다. 계획개선이라는 주장도 있고 시장개혁이라는 분석도 있다. 우선적으로 현재의 조치는 계획개선과 다르다. 북한 관리가 언급했듯이 토지개혁 이후 최대의 정책변화다. 계획 작성과 가격제정의 분권화가 결정됐다. 북한이 최근까지 공식적으로 유지해왔던 계획의 일원화·세부화 체계는 의미를 상실했다. 자재공급 체계는 물자교류 시장으로 변했다. 생산재의 중앙관료식 할당 체계에서 시장조정 체계로 변한 것이다.

 가격현실화와 현물임금제의 변화 역시 주목할 만하다. 90년대 중반 북한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다. 식량위기와 공장가동률 하락으로 식량 배급제가 의미를 상실하고 국영 및 협동상점의 유통체계도 마비됐다. 공식부문의 위기는 암시장 폭발로 이어졌다. 암시장이 소비재 유통을 주도하면서 국정가격과 암시장 가격은 더욱 크게 벌어졌다. 이중가격 체계는 공식부문의 상품을 암시장으로 유출하도록 함으로써 공식부문의 위기가 더욱 가속화하는 악순환의 고리로 작용했다. 이번 조치는 가격 및 임금 현실화를 통해 공식부문을 활성화시켜 이를 통해 암시장을 축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 당국의 목적은 분권화와 규제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계획기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의도는 북한 경제의 현실적 상황에서 실현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급능력이다. 식량수급 구조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소비재의 생산 역시 낮은 공장가동률을 감안할 때 단기간에 공급능력이 정상화되기는 어렵다. 북한 당국은 가격 현실화를 통해 소비재의 유통을 공식 부문으로 흡수하려고 하고 있으나 문제는 가격 탄력성이다. 암시장의 가격수준을 고려해서 가격 인상을 시도했지만 책정된 가격이 수요와 공급 구조를 정확히 반영하지 않는 이상 가격구조의 왜곡을 피할 수 없다.

 북한 당국의 의도와 관계 없이 거시경제 운영은 과거의 관료적 조정체계에서 시장조정 체계로 변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조치를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경험과 비교하고 있지만 차이도 명확하다. 우선적으로 북한 당국의 거시경제 운영능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정책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90년대 후반 경제침체기와 비교해 현재 국면이 경제 회복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공장가동률은 저급한 수준이고 분업구조의 혼란은 지속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시장조정 기능을 통해 계획능력을 회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정책변화의 효과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개혁의 강도와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유례없는 경제위기 경험이 개혁확대의 배경으로 작용한다면, 국제환경은 그 반대다. 중국과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수출확대와 외자유치, 그리고 공적 차관을 도입할 수 있었다. 북한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가 지속되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시장의 참여 기회가 봉쇄돼 있다.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적극적인 관계개선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를 재개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통해 적극적인 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근 구도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7차 장관급 회담은 다시금 남북한의 신뢰회복과 교류협력의 활성화 계기가 됐다. 북한은 단기적으로 식량의 외부공급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자본과 기술도입이 필요하다. 북미 관계의 교착이 장기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대남관계 개선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낙관하기 어려운 걸림돌이 많다. 군사문제는 여전히 해결 전망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대선 정국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정책의 지속성 여부도 장담할 수 없다.

 북한의 경제정책 변화의 실험이 시작됐다. 북한의 변화는 어떤 식으로든 한반도 공존공영의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한반도는 경제적 변화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지나친 낙관도, 냉전의 패배주의도 문제가 있다. 미래를 지향하고 상호 호혜적 협력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