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CEO와 위기의식

 ◆노범석 메타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우리는 위기하면 국가안보나 노사분규, 천재지변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최근 연이어 터지는 코스닥기업의 비리, CEO의 도덕적해이(모럴 해저드), 비윤리적이지만 합법적인 인수합병(M&A), 사내직원에 의한 기밀유출과 같은 미시적 위기가 급속히 대두되고 있다.

 또 이는 기업 영속성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한마디로 최고경영자는 ‘위기의 일상화’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큰 위기는 주로 외부 환경의 도전으로 비롯된다. 그러나 일상화된 위기는 내부 환경으로부터의 도전이어서 흔히 무시되기 싶다. 우수 인재의 퇴사, 주요 고객의 이탈, 고객과의 점진적인 관계 악화 등은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무시되고 방치된다. 결국 기업은 생존을 위협받는다.

 IMF 이후에 사멸한 그룹사나 벤처업계의 대부인 메디슨의 부도 등은 일상화된 위기를 무시한 결과라고 하겠다.

 그러면 어떻게 일상화된 위기는 극복할 수 있나?

 가장 먼저 위기를 탐지하는 기업의 감각기관을 키워야 한다. 기업은 유기체이고 환경변화를 감지하고 적응하면서 진화한다. 감각기능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생존을 위협받거나 도태된다.

 기업의 감각기능은 ‘커뮤니케이션’이다. 공중과의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위기신호를 받아들이고 다시 대응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이 위기관리다.

 주위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기업이 공중의 다양한 위기신호를 무시한 채 ‘무인도 경영’을 하고 있다. 내외부 공중의 요구를 무시하는 습관적인 경영활동은 내부 사기 저하, 고객들의 불만 누적, 우수인재 이탈 등의 결과로 이어진다.

 둘째로는 위기를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위기의 범위를 폭넓게 규정하고 위기발생을 감지하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만든 후에는 평소에 훈련해야 한다.

 한 외국기업은 모든 직원들이 반드시 한달 이상의 휴가를 가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장기휴가 제도는 어떤 결원이 생겨도 조직 운영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위기관리시스템이다. 한두명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기업 시스템이 마비되는 경우가 흔한 우리 기업에는 무척 의미심장한 위기관리방안이다.

 셋째로는 평소에 위기를 예방해야 한다. 예방은 기업의 관계자산에서 비롯된다. 관계자산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무형자산이다. 지식자본이 21세기 기업의 경쟁력이듯이 관계자산은 21세기의 기업의 생존력이다.

 다만,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 튼튼하 관계자산은 오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넷째로는 말을 잘해야 한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교훈이 적용된다.

 기업이 공중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수사학적으로 잘 정제되고 관리되야 한다. 최근 정치권의 잇딴 설화(說話)는 대표적인 수사학적 실패라고 보여진다. 말 잘하는 CEO뿐만 아니라 말 잘하는 기업이 위기관리도 잘한다.

 경영자는 기업이 위기에 노출된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들다. 그러나 기업은 유기체이기 때문에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제 무풍지대에서 유풍지대로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