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운 매크로비즈니스네트워크 사장 dcho@mbn-group.com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특성 짓는 두 가지의 법칙이 있다. 컴퓨터의 산술 능력의 발전 추세를 규정하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과 통신 대역폭의 발전 추세를 규정하는 ‘멧카프의 법칙(Metcalfe’s Law)’이 그것이다.
무어의 법칙은 컴퓨터의 계산 능력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고 규정한다. 전 세계 네트워크 대역폭은 최소한 그 증가율이 3배 빠르게 진행되어 왔다. 즉 대역폭은 6개월마다 2배씩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이러한 대역폭의 증가 양상을 규정한 것이 멧카프의 법칙이다.
지난 30여년동안 트랜지스터의 단가는 지수함수적으로 감소하여 거의 공짜나 다름없게 되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수백억개의 트랜지스터를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또는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펑펑 낭비하는 계산 능력의 풍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계산 능력의 풍요는 반면으로 컴퓨터와 컴퓨터를 잇는 네트워크의 연결능력, 즉 대역폭(bandwidth)의 희귀성을 극명하게 대두시켰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후반부터 WDM(Wavelength Division Multiplexing) 기술의 현실화로 인해 대역폭이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광섬유 한가닥에 전송되는 파장의 수는 12개월마다 2배로 증가해왔다. 이러한 막대한 대역폭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통신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도시와 도시간 연결 용량은 혁신적으로 증가하였음에도 마지막 1마일 (last mile) 연결이 느린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85년 유사하게 컴퓨터 용량의 소위 과잉발전에 따라 기술주들의 폭락이 있었고 이것이 주식시장의 대폭 하락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1년 이내에 다시 반등을 보였는데, 이는 대중이 이렇게 풍족하게 된 컴퓨터의 능력을 충분히 흡수하고 또한 더욱 강력한 능력의 컴퓨터를 요구하게 됐다. 따라서 반도체 산업도 성장을 계속하였고 PC메이커들도 호황의 곡선을 재개했다. 이번에도 통신 산업에 과잉 투자했다는 의식이 팽배하여 시스코·루슨트테크놀로지 등을 비롯한 대형 통신 기술주들이 시장 하락을 주도했다.
이번에는 1년 만에 회복은 어렵다. 그 투자의 차원이 훨씬 크고 대중의 초고속인터넷 연결 증가, 그리고 대역폭을 낭비하는 각종 서비스, 소프트웨어, 스토리지 등의 증가 속도가 모두 결합하여 새로운 시장 패턴을 형성할 것이고 그 시장의 규모가 소위 ‘신경제’의 리바이벌을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경제는 과연 죽어서 부활이 없을 것인가.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부활의 시기가 문제다. 아마도 2003년 후반을 점치고 싶다.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기술은 항상 ‘희귀재(scarce resource)’를 ‘풍요재(abundant resource)’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 전산처리 능력은 이제 풍요재가 됐고 반면에 데이터통신용량, 즉 대역폭이 희귀재로 인식되었다.
통신기술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되었으며, 경제적으로는 이렇게 풍요롭게 된 MIPS를 함부로 쓰도록 대중을 몰아가는 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IBM·인텔 등 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큰 돈을 벌었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였다.
이제 시장은 분수령을 넘었다. 과거 통신 인프라를 이루는데 공헌한 기존 통신 회사들(예를 들면 시스코), 그리고 WDM 전광 통신 환경을 구축하는 신생 통신 회사들 모두 큰 돈을 벌기는 어려울 것 같다. 비록 앞으로 폭발적인 소비자의 초고속인터넷 연결과 대역폭 수요의 급증이 발생한다 해도 돈 버는 회사는 그러한 대역폭을 파는 통신 리테일 서비스·VOD·게임 회사 등 대역폭을 함부로 낭비하도록 소비자를 유도하는 회사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