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세계 최강을 자처하는 보다폰과 NTT도코모가 유럽시장에서 격돌하고 있다. 물론 지금 당장 가입자 확보나 매출 경쟁을 벌이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조정 폭풍에 휘말리고 있는 세계 통신시장에서 최후의 승자를 가려내기 위해 조용하지만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양사가 부딪치고 있는 분야는 다름 아닌 데이터통신. 음성통화의 한계로 수익성에 취약점을 노출하고 있는 통신사업자들이 미래의 수익원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다.
특히 조만간 2.5세대 GPRS단말기와 서비스가 쏟아질 유럽에서 이 시장을 선점한다는 것은 통신패권의 향배와도 직결된다. 일단 도코모의 선제공격이 무섭다. 일본 최대 사업자이면서 휴대폰을 이용해 뉴스와 오락 애플리케이션을 즐길 수 있는 i모드라는 최고의 히트상품을 보유한 도코모는 이미 유럽 통신시장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 선봉은 역시 i모드다.
도코모는 이미 네델란드의 KPN모바일에 12.5%의 지분을 갖고 있다. KPN은 네델란드는 물론 독일·벨기에에서 총 14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만만치 않은 사업자다. 도코모는 지난 4월 네델란드에서 i모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KPN의 독일 자회사인 E플러스와 벨기에 자회사인 바세는 각각 3월과 올 가을 i모드 서비스에 돌입했거나 할 예정이다.
비록 아직은 10만명에도 미치지 못하는(지난 6월말 현재 6만여명) i모드 가입자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만 도코모는 자신만만하다. 내년 말까지 유럽 3개국에서만 가입자 100만명을 확보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착착 진행중이다.
우선 지금까지 i모드 확산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단말기 문제가 해결될 조짐이다. 조만간 카메라를 장착한 최고급 모델과 100유로대의 저가 모델이 현지에서 출시된다. 게임이 내장된 모델도 나온다. 판매망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이와 함께 i모드 제휴업체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스페인의 텔레포니카모바일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고 프랑스 보그텔레콤도 동참했다.
이런 환경에 자심감을 얻었는지 도코모는 9월부터 런던 소재의 한 자회사를 도코모유럽으로 상호를 바꾼 후 유럽 지주회사로 출범시킨다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터줏대감 보다폰이 손을 놓고 있을리 없다. 부채와 수익성 악화로 부실기업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 여타 통신사업자들과는 달리 보다폰은 여전히 잘나간다. 보다폰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1억39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주력시장인 독일과 영국에서 가입자가 늘어났고 미국에서도 순증치를 기록했다. 특히 보다폰은 수익성을 위해 지출규모가 작은 가입자를 방출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순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보다폰은 올 회계연도 동안 1000만명의 신규가입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보다폰은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통신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i모드의 진군에 대비해 일본자회사인 J폰의 ‘샤메일서비스’를 기반으로 유럽 7개국에서 디지털 사진전송 서비스를 시판키로 했다. 이미 메시징서비스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보다폰이 i모드를 정면으로 겨냥, 사진을 찍어 e메일을 보낼 수 있는 샤메일서비스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것도 일본시장에서 도코모와 경쟁하는 제품을.
보다폰은 이를 대대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아예 카메라를 장착한 컬러 단말기를 일본업체에 대량 주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선보이고 있는 카메라 장착 컬러 단말기는 샤프·소니에릭슨 등이 공급하고 있다.
보다폰은 한발 더 나아가 대부분의 사업자가 서비스 연기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내년 초 독일에서 3세대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코모를 의식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데이터통신의 주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한 것 같다.
일본에서 성장해 유럽 정벌에 나선 도코모와 영국에서 출발해 일본까지 진출한 보다폰이 유럽시장에서 벌이는 자존심 경쟁이 볼 만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