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부부의 성을 다룬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가 또다시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자 파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민단체나 영화계에서의 반응이야 이미 예견된 것이지만 최근 영등위 위원 3명이 사퇴를 선언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영등위 위원간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사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한 것은 영등위가 내부 이견갈등 하나 조율하지 못하는 어설픈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죽어도 좋아’의 등급 판정에 대해 굳이 얘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영등위의 등급 판정이 점점 영상 마니아나 업계로부터 신뢰성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 주목한다. 특히 일관성없고 비상식적인 일부 판정 결과는 영등위의 존립 근거마저 의심케 하고 있다.
최근 영화 메이저 직배사 가운데 하나인 A사는 9월로 예정돼 있는 모 DVD타이틀 출시를 무기한 연기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출시 자체를 포기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영등위 심의과정에서 극장 개봉과 비디오 출시에서도 문제되지 않은 영화 장면을 유독 DVD 심의에서만 문제삼아 삭제를 요구한 것이 그 이유다. 결과적으로 이 타이틀의 국내 출시를 기다려온 사용자들은 또다시 허탈감을 느끼며 외국 쇼핑몰 사이트를 찾아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A사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비디오에서는 버젓이 나오는 장면을 DVD타이틀에서는 암전 처리하는 것이 다반사다. 일부 DVD플레이어 사용자는 너무도(?) 선명한 DVD 화질 때문에 비디오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 쉽게 눈에 띄기 때문이라는 다소 자조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등급 판정도 상식적인 룰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제작사나 사용자 모두를 헷갈리게 하고 있다.
적은 인력으로 많은 영상물을 심의해야 하는 영등위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나 영등위의 심의기준이 보다 객관적이고 일관성을 가질 때 작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문제 제기나 항의요? 영등위에 그런 거 하면 안됩니다. 마음에 안들면 아예 출시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는 없어요.”
심의결과에 대해 문제 제기나 해명을 요구해보지 그랬냐는 기자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답한 모 업체 관계자의 말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느껴진다.
<문화산업부·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