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화 KISTI 해외정보사업실장
최근 북한소식을 전해 듣노라면 그 놀라운 변화에 어리둥절한 느낌을 받는다. 러시아가 페레스트로이카의 물결을 타고 철의 장막을 거두고, 중국이 조그만 탁구공에 죽의 장막의 문호를 열었듯이, 바야흐로 북한도 이제 외부와 차단돼 있던 장막을 서서히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희망을 갖게 한다. 특히 북한의 경제개혁이 중국과 러시아의 개혁·개방뿐만 아니라 영국·이탈리아·스웨덴 등 서방세계에 파견한 경제대표단과 시찰단의 결과를 참고한 것이고, 오는 10월에는 남한에까지 경제시찰단을 파견한다는 사실은 북한의 개혁범위에 대해 더 큰 기대를 갖게 한다.
물론 가격인상, 배급제 일부 폐지, 인센티브제도 도입, 환율조정 등 일련의 경제 제도 개선을 통해 북한이 추구하는 바는 현재 북한이 처한 극심한 경제난을 인민들의 자력갱생 노력을 통해 풀어보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북한의 변화 과정을 국가차원의 경제관리 능력을 제고해 북한식 사회주의를 완성하려는 시도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북한을 왕래하며 활동하는 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북한의 변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한번 변화의 물결을 탄 사회는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변화의 시작이 사회주의를 완성하기 위한 조치든,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든 북한의 주민들은 이미 시장경제의 흐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정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던 배급표 대신 현금을 내고 식량을 구입해야 하고, 교통비와 주택 임차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다만 의료와 교육부문을 비롯한 30개 범주의 사회보장제도는 무상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북한의 개혁을 지켜보면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 중 하나가 과학기술자 우대현상이다. 이전부터 북한은 과학기술과 정보통신부문의 개발을 통한 강성대국 건설을 주장해왔다. 이번 개혁조치에서 교육자, 공장노동자와 함께 과학기술자의 월급이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자의 인재육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북한은 각급 학교에 IT영재를 위한 특수학급을 지원하고, IT분야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다방면으로 경주하고 있다. 평양시내 고려호텔 부근의 건물에는 ‘온 사회를 인터넷으로’라는 구호가 걸려있다고 한다. 또한 남북합작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PC방을 평양에 개설하였고, 아리랑축전의 예술공연에서는 컴퓨터와 인공위성 그림을 배경으로 한 ‘21세기는 정보산업화 시대를’이라는 구호를 내보였다.
북한이 이처럼 정보통신분야를 개혁·개방의 기본 축으로 삼는 것은 중국 상하이의 비약적인 발전상을 모델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보유한 가장 우수한 자원인 인력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점은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준비중인 한국이 정보통신산업을 그 발판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남한은 정보통신기술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선진국이다. 북한이 아리랑축전에서 ‘정보화시대’라는 구호를 내걸었다면 남한은 월드컵 개막식에서 정보화시대의 첨단기술을 보여주었다. 이미 북한의 정보인력이 남한과 협력하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며, 남한의 교수진이 북한의 김책공대에서 강의를 개설하였다.
북한은 이제 변화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개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북한의 개별 조직들의 재량권이 확대되고, 이에 따라 소득증대를 위한 대외협력이 강화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따뜻한 시선으로 격려하고, 한국과 더불어 국제사회에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남북 협력사업을 강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골방에 숨어 지내던 사람은 아주 희미한 빛에도 눈이 부시다. 오랜 폐쇄사회에서 이제 개혁·개방을 향해 한 발을 내딛는 북한에는 모든 것이 새로운 시험대일 수 있다.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더 큰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빛에 적응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조심스레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미 반세기를 기다려 오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