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2003년부터 이공계대학 출신 유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1명당 2만∼3만달러의 유학경비가 지원된다고 기획예산처가 발표했다. 유학대상자 선발은 대학·지역별로 쿼터제를 마련해 중·하위권 대학과 지방대학 출신자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현상을 차단하고 국내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수연구인력을 확보하자는 취지로 보이나 잘 보면 너무나 한심한 처방이다.
이 정책은 여러 면에서 잘못됐다. 이공계 키우기 정책을 교육부와 과학기술부·산업자원부·국방부 등 관련 부처에서 지난 몇 달 동안 수없이 논의해왔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난데없이 기획예산처에서 벼락치듯 국비유학정책을 발표한 것은 대한민국에 인력양성 정책수립시스템이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놓은 꼴이다. 이 문제는 관련 부처와 산업계·대학·연구기관이 함께 다시 검토해야 한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을 먹여살리는 주력기간산업(반도체·가전·자동차·조선·석유화학·철강 등)의 경우 앞으로 심각한 인력부족이 예상되는데도 이공계 지원이 급속히 줄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 진학 시 우수한 학생들이 안정된 고소득 직업이 보장되는 법대와 의대로 몰리면서 상위권 이공계 지망자의 질이 해마다 크게 떨어지고 있다. 왜 그런가. 이공계를 나와서 취직을 하면 연봉도 낮고, IMF 같은 위기가 오면 제일 먼저 퇴출당하고, 직장에서 승진할 기회도 적기 때문이다. 또 근무지도 교육·문화시설이 낙후한 지방이 많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경은 고사하고 인정받기도 어렵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공계 기피는 막을 수 없다. 발표된 정책은 유학을 보내준다는 당근으로 상위권 학생을 이공계에 붙잡아둘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여러 면에서 잘못된 판단이다.
첫째로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 높은 연봉과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평생 직장이 없다면 과연 우수학생들이 이공계를 선택하고 유학길에 오를까. 유학 후 이들이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남아 있더라도 우리에게 큰 이익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억지다. 어느 외국업체가 자기 회사보다 한국에 더 협조하는 직원을 용납할 것인가. 이공계 기피를 해결하는 원천적인 방안은 사회에서 이공계 출신을 정당하게 대접하는 것이다. 국내 많은 기업, 첨단기업까지도 직원들이 연공서열에 따라 연봉을 받는다. 능력급이 있어도 차이가 심하지 않다. 이공계 직원이 사무직과 같은 수준으로 연봉을 받는다면 과연 힘들여 이공계 전공을 택하려고 할까. 전문직을 우대해야 한다.
한편 이번에 발표된 정책이 우수인력을 이공계로 유치하자는 목적보다 주어진 이공계 학생을 어떻게 유학을 보내서 더 잘 교육할 것인가에 치중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유학대상자 선발에서 지역이나 대학별로 쿼터를 준다는 발상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정책을 고안한 사람은 한국 이공계 대학원의 수준을 한심하다고 보는 모양이다.
홍콩의 아시아위크가 매년 시행하는 아시아 대학평가를 보면 종합대학 순위에서 서울대학이 3위, 고려대와 연세대가 20위 이내며, 전문공과대학에서 카이스트와 포항공대가 1, 2위를 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이 정책에 따르면 아시아의 모든 나라는 이공계 대학원 교육을 미국에 맡기라는 말인데 SCI급 연구실적을 볼 때 물리학·전기컴퓨터공학 등은 몇몇 한국 대학이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의문이다. 한국 이공계 대학원의 경쟁력을 세계적으로 올리는 정책이 우선돼야 산업기술인력의 수급이 안정된다. 유학생 지원에 300억원을 투입한다면 국내 이공계 대학원의 수준을 높이는 데 그 몇 배를 투자해야 한다. 또 실력있는 이공계 학생은 유학을 가면 대개 현지 장학금을 받는다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 현재 거의 전무한 국내 이공계 대학원 재학생에 대한 장학금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
이공계 대학원 교육에서 군복무는 참으로 어려운 이슈다. 빠르게 변하는 전공의 특성상 교육 도중 2∼3년의 단절이 있으면 교육이나 연구의 질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 시행 중인 산업기능요원·전문연구요원제도는 3년 혹은 5년을 산업체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병역의무를 대체하는 것인데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법무관이나 군의관처럼 선발된 이공계 출신을 군에서 전문직에 배치해 전공실력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겠다. 또 이번 정책에서 유학생 선발기준을 군필자로 제한하면 이를 지망하는 많은 이공계 대학 재학생이 대학 재학 시 미리 군복무를 마쳐놔야 할 것이고, 미필자도 허용하면 유학 도중 군복무를 위해 귀국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수 있다. 우리 모두 무엇이 과연 바람직한 방안인가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