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바뀌는 통신장비 구매제도

 최저가입찰제가 주류를 이루던 통신업계의 장비구매 관행이 바뀌고 있다. 특히 KT와 SK텔레콤 등 메이저급 통신장비 구매업체가 최저가입찰제라는 기존 구매관행에서 탈피해 가격·성능·기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후 장비를 구매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것은 기대해 봄직한 일이다. 국내 통신장비업계의 채산성을 약화시키고 국제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의 하나가 최저가입찰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잘 알다시피 최저가입찰제란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내는 업체에 공급권을 주는 제도다. 구매과정이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장비구매에 따른 잡음이 거의 없고 최소가격으로 장비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그동안 공기업인 KT는 물론 민간 통신업체들이 최저가입찰제를 선호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장비공급업체에는 엄청나게 불리한 제도다. 출혈경쟁을 유도함에 따라 장비업체의 채산성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국제경쟁력 제고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또 구매장비에 대한 유지보수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심지어는 성능이 떨어지는 장비를 공급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일부에서는 국내 통신장비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할 정도니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가 기술력이나 제품 경쟁력, 유지보수 능력,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후 낙찰자를 결정하는 종합평가제 도입을 환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신업체들이 새로운 구매방식을 도입하게 되면 무분별한 가격경쟁으로 얼룩졌던 통신장비 시장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뿐 아니라 수요침체에 따른 매출부진과 과당경쟁으로 설자리를 잃고 있는 국내 통신장비업계의 숨통도 트일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차세대네트워크(NGN) 구축사업과 WCDMA 사업을 계기로 새로운 형태의 장비 구매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KT가 액세스게이트웨이 프로젝트 장비공급 적격업체로 선정된 LG전자와 삼성전자, 한국루슨트 등 3개 업체에 지역 및 물량을 차등 할당하는 방식으로 장비구매를 추진하고 있으며, KT의 자회사인 KT아이컴은 가격입찰이 아닌 기술평가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고, SK텔레콤도 총소유비용(TCO:Total Cost of Ownership) 개념을 도입한 새로운 장비 구매방식을 시행하고 있다니 기대되는 바 크다. 차제에 데이콤·하나로통신·파워콤 등 다른 통신사업자들의 장비구매 방식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최저가입찰제에 따른 덤핑 논란은 통신장비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정보기술(IT) 입찰은 더욱 가관이기 때문이다. 선정과정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는가 하면 1원짜리 입찰과 각종 각서받기, 탈락업체에 대한 보상규정 미비 등 비합리적이거나 불공정한 관행이 성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탈락된 업체들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다는 것도 문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통신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메이저 업체들이 그동안 고수해 오던 최저가입찰제에서 탈피해 기술과 투자효율성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이를 계기로 국내 통신장비산업을 육성 보호할 수 있는 정책적인 배려와 함께 새로운 구매 방식이 정착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책마련에 나섰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