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지식정보화 사회에서의 상식과 법령

 ◆안문석 전자정부특위 위원장

 

 최근 대법원 판례 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다.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정보’의 재물성 여부에 관한 판결로 취지는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정보’ 그 자체는 유체물로 볼 수 없고, 물질성을 가진 동력도 아니므로 재물이 될 수 없다 할 것이며, 또 이를 복사하거나 출력했다 할지라도 그 정보 차제가 감소하거나 피해자의 점유 및 이용가능성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므로 그 복사나 출력 행위를 가지고 절도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판례는 또 “절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재물의 소유자 기타 점유자의 점유 내지 이용가능성을 배제하고 이를 자신의 점유 하에 배타적으로 이전하는 행위가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정보’를 빼내어서 복사나 출력 행위를 한 행위는 절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대법원 제3부 02-7-12 2002도745)

 이 사건의 구체적인 ‘재물’은 특정회사의 설계도 등이 다른 회사에 유출될 경우 그 회사에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끼치는 ‘복사된 정보’였다. 우리의 상식은 설계도 등의 복사 행위를 통한 유출은 당연히 ‘절도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법원의 이 판례는 상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정보’ 등은 ‘타인의 소비가 나의 소비를 침해하지 않은 재화’다. 이 재화, 즉 경제학자들이 공공재(公共財)로 정의한 이 재화도 엄연한 재화다. 유체물만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재화로 보는 시각은 지식정보사회의 상식에는 맞지 않는다.

 지식정보사회라는 말 자체가 지식과 정보가 이미 중요한 재화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과 정보가 상식적으로는 중요한 재화인데 법률에서는 아직 재화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사건으로는 회사 컴퓨터를 이용해 회사 기밀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직원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를 얻을 목적으로 그 직원의 전자우편을 검색한 회사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검찰에 의해 기소된 사건이 역시 최근에 있었다. 회사의 주장은 그 직원이 사용한 컴퓨터도 회사의 재산이고, 그 직원이 사용한 통신망도 회사 소유며, 전자우편의 서버도 회사 소유기 때문에 직원의 전자우편을 검색한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회사가 직원의 동의 없이 직원의 전자우편을 보는 것은 개인정보 침해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이 사건도 회사가 본 상식과 검찰이 갖고 있는 상식 사이에 대단히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제도가 전세계적인 표준으로 퍼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개혁에 성공한 대부분의 나라가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앵글로색슨 계통의 불문법 국가라는 사실이다. 우리 같은 법통을 가진 대륙법 계통의 국가는 행정·규제 개혁, 전자정부 구현 등에서는 불문법 국가들에 비해 낙후돼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불문법 계통의 국가에서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배심원’들이 특정 사건의 유죄와 무죄를 결정한다. 세상이 변하면 배심원의 구성이 변하고, 배심원의 구성이 변하면 동일 사건이라도 유죄와 무죄가 자연스럽게 바뀐다. 상식이 제도를 이끌어간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대륙법 국가에서는 ‘한번 만들어진 법은 영원히 존속하는’ 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령이 살아 있는 현실을 옥죄는 반상식적인 행태를 우리는 흔히 발견한다.

 상식에 어긋나는 법령은 ‘준법투쟁’을 가능하게 하고, 이것은 법령에 대한 순응도를 낮게 한다. 낮은 순응도는 높은 행정비용을 초래한다.

 지식정보사회가 보여주는 특징의 하나로 ‘지식과 정보의 평균수명이 현저히 단축되는 것’을 들 수 있다. 평균수명이 2년 내지 3년으로 단축되는 것이다. 이 말은 지식정보사회의 정부 환경이 2년 내지 3년으로 단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정개혁이나 규제개혁을 하기 위해 법령을 개정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2년 이상을 감안하면 우리의 제도는 항상 살아 있는 현실을 뒤에서 좇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살아 숨쉬는 현실 속 상식과 과거의 반영인 제도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해 정말 심각하게 연구하고 토론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상식적인 제도가 가장 좋은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