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지하경제와 e비즈니스

 ◆김종갑 산자부 산업정책국장 jongkkim@mocie.go.kr

최근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우리나라의 부패 정도가 과거에 비해 다소 개선됐다고 밝혔다. 사실 ‘부패’ 문제에 대해서는 ‘지하경제’의 문제를 결부시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자가 뇌물수수 등 다분히 행태론적이고 어떤 의미에선 대증요법적인 해결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후자는 사회과학적인 시각에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OECD 등 국제기구 사이트에서 ‘부패(corruption)’라는 메뉴는 쉽게 찾을 수 있어도 ‘지하경제(underground economy)’에 대한 별도메뉴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각국의 지하경제를 측정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연구결과에 따라서는 GDP의 6% 수준에서 50%대 수준까지 천차만별이고 개념도 연구목적에 따라 다양하다. 이러한 문제는 부패도 마찬가지다. 국내의 유사연구를 보더라도 일단 지하경제를 산출한 다음 부패규모를 산출하는 정도니 그 정확성이라는 게 장님 코끼리 만지기 수준이다.

 현재 지하경제에 대해서는 몇 가지 우회적인 판단지수들이 있지만 가장 많이 인용되는 헤리티지재단의 블랙마켓(Black Market) 지수만 보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얼마 전에 KDI에서 우리나라 지하경제의 규모를 20% 수준으로 발표한 적이 있지만 최근 국제학계에서는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에 대해 GDP의 30∼40% 수준으로 보고 있어 거의 대부분 15% 내에 속하는 선진국들과 대조를 이룬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경제에 있어 e비즈니스의 확산은 매우 중요하다. e비즈니스는 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물론 투명한 거래를 통해 지하경제문제와 나아가 부패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따라서 e비즈니스는 단순한 경제의 문제를 넘어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되고 있다. 물론 이는 e비즈니스의 본질 자체가 개방과 투명성을 전제로 한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내 e비즈니스는 당초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터넷의 확산이야말로 e비즈니스 발전의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이 갖는 개방성은 e비즈니스, 특히 기업간(B2B) 거래 확산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일천한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그룹별·업종별로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분업구조를 이룬 탓도 있지만 상당부분 아직도 사회 전반적으로 신뢰수준이 높지 못한 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대면적인 접촉이야 기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신뢰 분위기가 형성돼가는 것은 성숙한 자본주의는 물론 e비즈니스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Trust)’를 통해 사회의 전반적인 신뢰수준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규정하고 자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차원의 자본으로 강조한 바 있는데 그가 사회적인 신뢰수준이 높다고 평가한 미국이 e비즈니스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IDC의 추정통계에 의하면 2002년 세계 전자상거래 매출의 40% 이상을 미국이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겨우 2% 수준에 불과하다.

 앞으로 수 년 내에 e비즈니스라는 말은 종말을 고할 것이다. 모든 비즈니스가 곧 e비즈니스로 간다는 말의 역설적인 표현이겠지만 개인도 기업도 얼마만큼 신뢰라는 자본을 축적해 나가느냐가 e비즈니스 성공의 관건이며 궁극적으로 시간은 걸릴지 모르나 우리 사회의 지하경제를 줄이고 나아가 부패를 줄여 나가는 길이다. e비즈니스는 바로 국가 전체의 수준을 한 단계 도약(quantum jump)시킬 수 있는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