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역사를 두고 말들이 많다. 산업자원부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올해로 20년째가 됐다고 주장하는 반면 산업계와 학계 관계자들은 37년이 맞다는 주장이다.
수만년 전의 고대역사를 되짚는 경우라면 어느 정도의 오차는 허용될 수 있다. 하지만 논란을 빚고 있는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역사는 반세기도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17년의 편차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대목이다.
65년 미국 코미그룹의 대한 투자로 고미반도체가 설립됐고 이를 효시로 66년에 시그네틱스가, 67년에 페어차일드와 모토로라가 한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었다. 69년엔 일본 도시바가 70%의 지분투자로 한국전자를 설립했다. 삼성전자와 LG는 자사의 사사(社史)에 이 시기를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발아시기 또는 요람기로 각각 서술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반면 올해를 반도체산업 20주년으로 정한 산자부와 협회는 역사의 기준을 웨이퍼 가공 공장의 설립 시점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74년 오퍼상인 켐코가 미국 ICII와 함께 한국반도체를 설립하고 웨이퍼가공 사업에 진출한 사실은 엄연한 역사로 존재한다.
업계와 학계 관계자들은 수출 1위의 산업으로 부상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의의를 기리기 위해 반도체의 날을 지정하는 데 대해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더욱이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산업유공자들에게 표창을 수여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굳이 올해를 20주년으로 못박으면서까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역사를 격하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많다. 정부의 논리대로 한다면 60년대 이후 80년대까지 우리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몸바쳐온 산업계 선구자들의 노고는 어찌할 것인가. 여기에 삼성전자와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가 메모리 팹을 건설한 83년을 반도체 산업의 원년으로 삼는 정부가 반도체 산업과 메모리 산업을 혼돈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따끔한 질문도 있다.
9일은 20주년 기념행사가 치러진 업계의 경축일이다. 경축일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 산업계 전반의 의견을 담는 사전작업이 필요했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 기회에 고증에 의한 반도체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했으면 한다.
<산업기술부·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