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소만사 사장 kdh@somansa.com
한편의 영화와 같아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던 9·11 테러가 발생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9·11 테러가 통신과 보안에 미친 영향은 이른바 칸트의 ‘태초의 충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9·11 테러 이후 1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그동안 정보기술(IT)분야 보안관련 움직임을 살펴보고 허와 실을 따져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인 것 같다.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는 예산을 대폭 증액하여 비밀스런(?) 보안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카니보어(Canivore)를 통해 테러리스트의 메일을 파악할 수 있다고 평가하는 한편, 트래픽 모니터링을 더욱 확대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생체인식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어 공항마다 안면인식 카메라를 설치하자는 법안의 상정 논의가 개진되었고 슈퍼볼 관중들 중 범죄자와 일치하는 사람을 색출하겠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물리적 테러뿐만 아니라 사이버 테러의 개연성에 대해서도 더욱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특히, 재난복구 백업센터에 대한 필요성이 다시금 부각되었고, 비즈니스상시운용체계(BCP:Business Continuity Planning)와 이와 관련한 재난복구 전문가 자격(CBCP), BCI 등 전문 자격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스토리지 밴더와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템통합(SI)업체가 모두 합심해 백업센터 구축만이 재난복구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몰아가고 있어 총체적인 접근이 아쉽다.
재난복구는 소극적인 준비가 아니라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위험관리(risk management) 활동이며 비용대비 효과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9·11 테러 1주년에 즈음하여 대비에 대한 막연한 강박관념만을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에 다시 한번 재난복구와 BCP에 대한 인식을 높인 재난이 발생했다.
9·11 테러는 그나마 ‘남의 나라 이야기’겠지만 태풍 ‘루사’는 바로 가슴 아픈 우리의 현실이다. 일본도 95년 발생한 고베 대지진 이후 금융권에서 백업센터와 BCP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은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루사’ 이후 BCP 관련 금융정책 입안에 중요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조원 이상이라는 사상 최대의 피해를 입힌 ‘루사’는 자연재해로 인한 국가기간시스템(철도·도로·통신)의 두절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강릉의 경우 4중 통신선로가 모두 두절된 상태가 지속되었다.
기상관측 사상 초유의 강우량이라는 핑계는 우리 사회의 기간 인프라인 통신의 두절에 대한 변명이 되지 못할 것이며 위안을 해서도 안될 일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통신이다.
그런 면에서 ‘루사’는 우리나라의 총체적인 시스템에 대해 다시금 뒤돌아보게 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할퀴고 간 것은 어쩔 수 없는 천재이나 재난을 미리 알고서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것은 분명 인재다. 특히 국가 운영의 실핏줄과 같은 통신망의 두절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있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중 통신선로가 왼전히 끊겨 대도시가 고립된는 사건은 새삼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9·11 테러 이후 우리나라는 재난복구와 보안에 많은 신경을 써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태풍 ‘루사’가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허점 많은 국가통신망을 흔들어놓고 갔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통신운용체계를 생각하게 한다.
유선망이 끊기고, 무선기지국도 날아가고 난 최후의 통신 라인은 무엇인가. 바로 위성통신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방·행정 등 반드시 필요한 정보전달조차 불가능했던 최악의 사태를 경험한 만큼, KT·SK텔레콤 등 대규모 기간통신사업자를 필두로 위성통신을 통한 최후의 백업라인 구축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