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선진국과 주5일근무제

 우리나라가 요즘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대접을 받는 일이 잦다. 대부분 ‘설마’ 또는 ‘월드컵 개최 때문이겠지’라고 반문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한국=선진국’의 공식은 이미 실제 상황이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발표한 ‘2002년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전세계를 선진경제·개발도상국·최빈국의 세 종류로 분류하면서 한국을 당당히 ‘선진경제’ 29개국에 포함시켰다. 이뿐만 아니다. 세계적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우리나라 관련 기사에서 한국 경제를 ‘선진공업경제’라고 표현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해외의 시각이 이처럼 변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 지난해 지구촌 동반 불황 와중에 우리나라 경제가 견실한 성장을 이룬 것이 계기가 됐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4180억달러로 OECD 회원국 중 10위다. 외환위기로 무너진 1인당 국민소득(GNP) 1만달러도 경제성장과 원화가치 상승에 힘입어 올해 다시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은 부동의 세계 1위고, 초고속인터넷·휴대폰 등 IT산업은 이미 세상이 다 알아주는 최고 수준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커졌는데도 스스로 선진국이라 자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영국 등 선진국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유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진정한 선진국은 경제규모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이 높다는 것이다. 또 어느 한 분야만 뛰어나다고 해서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동 산유국들이 선진국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간 우리 경제규모가 커진 것에 수출 주도의 경제성장이 발판이 됐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우리 경제를 평가할 때 ‘내수 주도의 성장’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견실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수 소비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세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면 돌파구를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적정규모의 내수시장이란 것도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정부도 이 같은 점을 감안해 기존 수출 드라이브 위주에서 ‘내수와 수출의 균형성장’이라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펴고 있다.

 재계가 ‘국제기준과 관행에 맞도록 보완되면’이라는 조건부 수용의사를 밝혔지만 요즘 정부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주5일 근무제’의 도입은 이 같은 경제패러다임의 변화 과정에서 선진국답게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내수시장을 키우려는 정부의 의도가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주5일 근무제는 당초 외환위기 때 인력구조조정의 대안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해고를 줄여보자고 제안된 ‘워크셰어링’이 시초다. 이것이 노사정 논의 과정에서 주5일 근무하는 대신 나머지 이틀은 여행·레저 등 여가활동과 자기계발을 위한 각종 서비스산업에 투자하라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한마디로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항상 기업에 우선 순위가 뒤지던 근로자 삶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소비 증대에 따른 내수시장을 확대하자는 개념이다.

 올해 휴가철이 끝났지만 유행어가 된 광고카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처럼 대부분의 직장인은 아무때나 훌쩍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없다. 1년에 한 번인 휴가에도 진정한 휴식은 뒷전이고 다른 피서객이나 상인들과 싸움만 피해도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 이런 문제가 상당히 해결될 것이다.

 주5일 근무제 도입은 이제 재계의 조건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여부가 판가름날 사안이다. 하지만 이 제도의 도입만으로 선진국처럼 삶의 질이 향상되고 내수시장이 확대될지 따져봐야 할 문제다. 분명한 것은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삶의 질 향상, 인권 신장, 문화시설 확충 등 사회 각 분야에 골고루 힘을 쏟아야 비로소 ‘진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것이다.

 윤원창 IT담당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