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지식사회의 마케팅

 ◆다카스기 노부야 한국후지제록스 대표이사 회장 kyu@etri.re.kr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지금까지의 사회 형태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었다. 산업혁명이 ‘혁명’으로 불리는 이유는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대형기계의 이용이라는 기술 혁신과 더불어 노동력과 생산수단이 분리되면서 지역사회와 가정·교육·생활·인간의 가치관 등 모든 것이 변한 것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의 변혁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바로 근대공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의 혁명이다. 근대공업사회에서는 규격화된 대량생산에 의해 생기는 규모의 이익이 기업의 이익과 경제성장에 직결되고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은 규격의 대량생산을 위한 대량화·대형화·고속화의 방향으로 진보해왔다. 그러나 지식사회에서는 기업의 이익과 경제성장은 주로 지혜의 가치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디자인·브랜드·비즈니스 모델·컴퓨터 소프트웨어·콘텐츠 등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인간의 가치관과 소비 행동도 크게 변화한다. 이것이 ‘지식혁명’이다.

 디지털기술이 가져다주는 정보혁명 현상은 ‘지식혁명’이라는 문명의 활약을 지지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정보혁명은 종래부터 이어져 온 기술 진보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기업경영에서는 ‘지식혁명’의 본질을 잘 이해한 후에 얼마나 정보기술을 잘 활용하고, 정보의 가공과 정리를 잘해나갈 것인지가 열쇠가 된다.

 한국은 대통령의 방침 아래 IT화·디지털화를 계속 추진해왔다. 초고속인터넷으로 대변되는 IT 인프라는 일본을 완전히 압도했으며 세계유수의 IT국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한국의 복사기시장에 있어 디지털화 비율은 아직 10%라고 하는 이상현상 그대로 머물러 있다. 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 등 경제적으로 낙후한 나라보다 뒤떨어져 있는 것이다. 4년 전 한국에 부임했을 당시 이것은 내게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이기도 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마케터 입장인 회사와 바이어 입장인 고객 양방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물건을 파는 쪽은 메이커로서의 역할과 품질보다 가격을 중심으로 단지 저렴한 복사기만을 만들어 대리점을 통해 팔아왔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복합적인 기능을 갖지만 가격이 비싼 디지털 기기보다 아날로그 기기가 더 적합했다. 고객의 입장에서도 기능보다 가격이 저렴한 아날로그 기기를 대리점을 통해 지연이나 학연 등을 중심으로 물건을 구입한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마케터로서의 우리들, 파는 쪽에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물건을 파는 입장이 마케터로서 고객의 생산성 개선 활동을 해나가지 못하던 것이다.

 앞으로의 기업경영에 있어 “정보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정보의 가공과 정리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가 열쇠가 된다”고 한 본질을 잊어버리고 단지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고객에게 제공해온 것이 원인이라는 것은 명백한 일이며, 이 책임이 무겁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복사기는 단순히 복사기가 아니다. 디지털기술에 의해 다기능화되고, 네트워크 기능을 갖춤으로써 오피스의 생산성을 개선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파는 입장은 고객에게 단지 가격이 싼 기계를 파는 판매자여서는 안된다.

 이에 우리는 직접판매 세일즈맨(일부 대리점을 포함하는)을 교육하고 우리 회사의 고품질 디지털 기기(기계 1대로 복사·프린트·팩스 등의 기능이 가능하며 컴퓨터와 연결돼 네트워크 기능을 갖는다)로 고객의 생산성 개선을 위해 어떻게 정보기술을 활용하고 정보의 가공과 정리를 행할 것인가 하는 본래 의미의 마케팅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지식사회로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세계 유수의 IT국가 한국이 이에 어울리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 공헌하기 위해서다.

 akasugi.nobuya@kor.xero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