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김정일식 벤처와 신의주

◆최 성 통일정보센터 소장 choisung21@hanmail.net

 

 김정일 위원장의 ‘북한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거대한 실험’이 구체화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스탈린주의적 계획경제의 낡은 시스템을 개혁하는 과감한 경제개혁을 추진하는가 하면,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일본인 납치사건에 대한 사과와 더불어 재발방지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다. 뒤이어 북한은 신의주를 특별행정구로 전격 지정하고 기본법을 제정한 것은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의 북한적 실험’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이번에 공개된 ‘신의주 특별행정 기본법’에 따르면 김정일의 강성대국 발전전략의 단면을 잘 읽을 수 있다. 우선 이 법에 따르면 신의주는 외교와 국방 등 극히 예외적 부문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독립적 지위를 누리게 되는 것으로서 기존의 북한식 경제 운영체계 속에서 보면 가히 ‘혁명적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신의주 경제특구는 ‘장관’의 책임에 따라 별도로 운영되며 입법·사법·행정권을 독립적으로 부여한다는 점에서 ‘국가속의 국가’로까지 불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신의주 경제특구의 지정은 이러한 법·제도적 차원의 의미 이면에 더욱 큰 함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김정일은 ‘신사고’에 입각하여 ‘정보통신분야의 발전을 통한 단번 도약 전략’을 북한의 국가발전전략의 핵심으로 설정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남북관계가 답보상태에 빠져 있을 때에도 유독 남북간 IT교류만큼은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특히 이번 신의주 특구지정은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2001년 1월 중국의 상하이를 방문, “천지가 개벽되었다”고 극찬한 이후 귀국하는 길에 신의주를 방문하였을 당시부터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북한당국이 2000년부터 남북한과 중국이 함께 추진해온 ‘신의주 소프트웨어·멀티미디어 밸리’ 조성 추진계획을 꾸준히 준비해왔다는 사실이다. 이 계획은 남한의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분야의 기술력과 자본, 북한의 우수한 인력, 그리고 중국의 행정력이 결합되어 신의주와 단둥 일대를 연결하는 거대한 동북아 IT벨트로 키워나가겠다는 야심찬 구상과도 무관치 않다고 볼 수 있다. 단둥의 하나프로그람센터와 평양의 평양정보쎈터는 이런 구상의 최전방 싱크탱크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 남북관계의 급진전 속에서 경의선 철도와 동해선 철도의 동시착공은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철도(TSR)가 연결될 경우 동북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동북아 물류기지의 허브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김정일의 신의주 프로젝트는 북한의 총체적인 국가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김정일의 신의주 구상은 성공할 것인가. 여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산적해 있다. 첫째는 자유로운 시장경제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해당 지역내의 법적·제도적 후속조처가 수반되어야 한다. 둘째는 김정일의 현대화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는 북한군부 등 내부 강경파의 동의와 협조가 수반되어야 한다. 셋째는 여전히 북한을 ‘악의 축’ 국가로 분류하면서 강경한 대북봉쇄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부시 미 행정부와의 관계개선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특히 북미관계의 개선은 김정일의 ‘IT발전을 통한 북한의 단번도약 전략’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 결정적인 장애가 되고 있는 바세나르 협약의 개정을 위해서도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핵심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협약에 따르면 486 이상의 컴퓨터 등 고성능 컴퓨터의 북한반입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김정일의 신의주 대실험은 어떤 면에서 ‘거대한 모험’의 성격을 띠고 있음은 분명하다. 특히 오늘날 북한의 열악한 실상은 물론 남한과의 경제적 격차, 그리고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엄청난 도전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인사가 바로 김정일 위원장이라는 점에서 그가 추진하고 있는 ‘북한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2002년 신의주 프로젝트’는 회피할 수 없는 길이며, 위험부담이 큰 만큼 그 인센티브 역시 대단히 크다는 면에서 ‘김정일식 벤처구상’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동서독의 통일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통일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북한지역의 독자적 발전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신의주 특구사업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