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 cahn@ahnlab.com

필자는 오래 전부터 이 세상에는 흑백논리만으로 판단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항상 여러 가지 측면을 갖게 마련이다. 따라서 한가지 측면에서만 보고 흑백논리로 판단하는 것은 전체적인 관점에서 오류에 빠지고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필자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항상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 단어가 있다. 바로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다. 심오한 뜻이 있는 단어라기보다 ‘뜨거운 가슴’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결국은 잘될 것이라는 열정을 뜻하며, ‘차가운 머리’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뜻한다. 서로 모순되는 것 같지만 열정과 냉철함이 동시에 갖춰질 때만이 올바른 선택과 좋은 결과가 가능하다는 것이 필자의 믿음이다.

 짐 콜린스가 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를 읽다가 필자의 생각과 비슷한 개념을 접할 수 있었다. 바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것이다. 이 말은 베트남 전쟁 때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병사들 중에서 미군 최고위 장교였던 스톡데일 장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수용소에 갇혀 있는 8년 동안 많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가능한 한 많은 포로가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든 전쟁 영웅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낙관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였다고 한다. 낙관주의자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와 주위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다시 다가오는 부활절에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결국 상심해서 죽는다고 한다. 반면 현실주의자는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에 대비하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아무리 어려워도 결국에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이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것이 개인이든 기업이든 성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사고방식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즉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과 눈앞에 닥친 냉혹한 현실을 결코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위대한 CEO 중 하나인 허니웰의 래리 보시디와 램 차란이 쓴 ‘실행(Execution)’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접할 수 있었다. 훌륭한 회사에서 똑똑한 CEO와 최고의 사람들이 모여서 좋은 비전과 올바른 전략으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결과를 내지 못해 결국 경쟁에서 뒤지는 경우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데 그 근본적인 원인은 실행력의 부족이라는 것이다.

 실행력의 부족은 관리자들이 높은 수준의 전략에만 몰두하고 실행 과정 또는 현장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근거없이 회사가 잘 운영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가 서서히 나락으로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즉 냉철한 현실 인식에 근거하지 않은 낙관적인 믿음이 잘못을 고칠 수 있는 기회마저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필자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머리와 차가운 가슴’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 대신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막연한 낙관(뜨거운 머리)과 현장 경영에 대한 개입 부족 또는 부족한 열정(차가운 가슴)이 좋은 회사를 실패하게 만드는 것이다.

 요즘 IT 불황, 그리고 벤처 불황이 끝을 모르고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한다. 냉철한 현실 인식, 과거에 대한 자기 반성, 현실에 근거한 치밀한 사업 계획, 그리고 구체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현장 경영과 함께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과 열정을 갖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