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단상]삼천만의 머드게임

 ◆니트젠테크 엔피아부문 사장 윤기주 kjyoon@enpia.net

게임에도 급수가 있다고 한다. 초급은 자기 수만 생각하는 사람이고, 중급은 상대방 수까지 읽는 사람이며 고수는 바닥에 깔린 수까지 예측하는 사람이다. 자기에게 불리한 패를 갈아치우는 그 이상의 경지도 있다지만 아무래도 최고수는 게이머들이 보여주는 집중력이나 성취욕을 게임대신 하루하루의 삶에서 보여주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올 추석에는 부산을 다녀와야 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부터 고민은 시작되었다. ‘언제 출발하지? 길이 막히기 전에 일찍 출발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오늘 오후는 의외로 밀릴지 모른다. 그러니 밤 늦게 출발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판단을 한다면 밤늦은 시간이 오히려 막힐 것이다. 어느 길로 가지? 경부고속도로를 피해 중부고속도로나 국도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보면 경부고속도로가 오히려 안막힐 지 모른다.’ 등등 출발시점과 길을 놓고 선택에 선택을 거듭했다. 결국 하행길은 무난하게 성공했지만 상행길에서는 도로 정체로 무척 고생했다.

추석, 설, 여름 휴가철. 우리는 이렇게 일년에 세번 어김없이 3000만이 동시에 참여하는 머드게임을 벌인다. 머드게임. 말 그대로 일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머리싸움을 펼치는 게임이다. 기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갤러그’와 같은 게임은 오랫동안 연마할수록 실력이 늘어나는 다소 ‘기계적’인 게임인 반면 머드게임은 다른 사람들의 전략과 수를 읽어야 하는 양방향이기에 훨씬 흥미진진하며 ‘인간적’이다.

물론 우리가 예전부터 실생활에서 펼쳐 온 3000만의 머드게임에는 추석이나 설 때의 민족 대이동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농부들이 내년 농사를 위해 어떤 농작물을 심을 것인지도 사실은 올해 농사를 지은 농부들끼리의 머드게임으로 결정되고 있다. 이런 사정이 있어서 우리나라의 게임산업이 세계 선두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21세기가 정보화의 세기라면 정확한 실시간 정보에 근거하지 않는 이런 식의 머드게임이 얼마나 완화, 소멸되는냐는 것도 정보화의 한 척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