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시장 개방을 위한 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회의의 주된 이슈는 단연 외자지분제한철폐 문제다. 이와 관련, KT 이용경 사장은 지난 8월 20일 선임을 추인받는 주주총회 석상에서 외자지분제한철폐를 추진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사장은 이날 자신의 발언이 여과없이 보도되자 다른 통신사업자들과 협의해 외자지분철폐를 정부에 ‘건의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발언 자체는 의미심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에는 주가부양책을 요구하는 소액주주들을 의식한 ‘선심성 발언’이라는 시각이 우세했지만 국내 통신시장이 완전히 개방돼도 손해볼 게 없다는 자신감의 표출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같은 자신감이 통신업계 전반에 퍼져 있는 것은 아니다. 선발주자인 KT야말로 통신시장의 지배력을 이용하면 아직은 경쟁력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후발주자들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통신시장이 개방돼 완전경쟁 환경이 도래하면 국내는 물론 해외 자본과 기업과도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곧바로 생존의 문제를 야기한다는 설명이다. 또 국가 기간산업이 헤지펀드나 외국계 기업에 넘어갈 경우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시각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업계는 WTO DDA 통신협상으로 인해 시장개방이 대세임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선진 각국의 압력도 압력이지만 통신환경의 변화가 이미 이를 용인하지 않는 데다 우리기업의 해외진출을 위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환경을 감안, 외자지분철폐에 대한 업계의 시각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통신환경의 변화다. 외자유치에 대한 국민의 의식이 바뀐 데다 기존 주주 역시 외국 자본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외자유치를 통해 통신산업의 활성화와 경기부양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외자지분제한이 철폐돼 외자를 많이 유치하면 주가에 호재로 작용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해외에서도 주식가치를 ‘인정해준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금 유동성 또한 개선된다.
이같은 점 때문에 일본을 제외한 선진 각국은 대부분 외국인 지분소유 한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미국·프랑스 등 일부 구미 선진국들은 직접투자의 경우 20% 제한을 유지하고 있으나 지주회사를 통한 간접투자 방식으로 외국인 투자를 100% 허용하고 있다. 다만 일본·캐나다를 비롯해 EC 역내 후진국이라 할 수 있는 아일랜드·포르투갈·그리스 등이 외국인 지분소유 한도와 관련 제한을 유지하고 있다.
이중 일본은 기본통신협정 발표 이후인 지난 98년 7월 NTT를 제외한 모든 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소유제한을 폐지했다.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국영사업자(PTO) 또는 주요사업자에 대해 외국인 지분소유를 철저하게 제한하고 있다. 여타 사업자에 대해서도 거의 예외없이 다수지분을 외국인에게 허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통신선진 각국은 시장규모가 크고 전망이 양호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통신망 또는 통신서비스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의 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는 외자지분제한 철폐다. 우리나라는 현재 KT를 포함한 기간통신사업자의 지분을 49%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어느 선까지 제한을 풀어야 할지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와 관련, 정부 WTO협상 자문역을 맡고 있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이한영 박사는 “현재 49% 수준인 외국인 지분소유 한도의 추가확대는 이에 따른 파급효과와 실익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이후 가능하다”면서도 “현실적으로 확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이어 “필요하다면 지분제한철폐 문제와 함께 미국이 시행하고 있는 공익성 심사제와 같은 질적규제를 도입하는 방법을 병행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
★관련 그래프/도표 보기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주요국가 외국인 지분소유 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