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의 증시 상황은 30년대 대공황 당시를 닮았다.’
어쩌면 으스스한 비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2년간의 나스닥 종합지수 상승, 하락 움직임을 29년의 다우지수와 같은 그래프에 차트로 만들어 보면 기분 나쁠 정도로 유사함을 발견하게 된다. 두 그래프 모두 급격하게 정점에 도달했다가 잠깐 보합세를 보인 뒤 급전직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우지수는 29년의 대폭락 이후 1년간 계속 곤두박질쳤다. 나스닥 종합지수도 이와 마찬가지 양상을 보이는 것일까. 다른 주가지수들도 마찬가지인가.
주가의 역사적 움직임을 분석하는 웹사이트 마켓히스토리닷컴(markethistory.com)의 토니 콜튼 사장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면서 “주가 하락 추세가 불안하게 가속화되면서 현 상황이 32년 초와 거의 흡사하다”고 분석했다.
반면 달리 생각하는 투자 전문가들도 많다. 30년대 시장과 나스닥의 차이점이 워낙 커 한마디로 단순 비교는 무리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다우지수가 20년대 미국 경제의 심장을 반영한 반면 나스닥은 하이테크라는 한 분야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엄격한 감독과 각종 사회 안전망, 느슨한 통화정책 등 현재의 경제 현실도 완전 딴판이다. 게다가 다우지수가 주가를 바탕으로 산정되는 반면 나스닥은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등 수학적으로도 차이점이 있다.
피셔인베스트먼트의 켄 피셔 회장은 30년대와의 유사성은 ‘잘못된 환상’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는 그러면 차트의 유사성을 어떻게 설명할까.
한마디로 우연의 일치라는 지적이다. 피셔 회장은 “많은 여성들이 마릴린 먼로처럼 보이지만 그렇듯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진실은 곧 밝혀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주식시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증시가 거세게 달아오를 때면 대공황을 언급하곤 했다. 이들은 29년의 다우지수가 일본의 80년대 말 거품과 다우지수의 87년 폭등과 폭락, 70년대 말의 금값 거품 등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강변하곤 했다. 이들은 공포심과 희망, 탐욕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예측할 수 있게 변화시키기 때문에 그 패턴이 반복된다고 역설했다.
다시 말해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모든 투자자들이 공포를 느껴 시장을 빠져나가지는 않지만, 이들 투자자가 주식을 일단 팔아치운 뒤에는 자신감 회복과 더불어 주가를 밀어올리는 새로운 매수세력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섀퍼인베스트먼트리서치의 시장 전략가인 제리 왕은 “장기 전망에 따라 투자하는 사람들은 사고싶은 만큼 주식을 보유하게 마련이라 다음 행동은 매도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어두운 전망을 하는 전문가들은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라고 잘라말한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광의의 주가지수들이 나스닥 하락을 따르면서 매도자들이 다음의 주가하락을 이끌게 된다.
그러면 어느 정도나 하락할까. 아마도 29년처럼 89%나 폭락하지는 않겠지만 30% 정도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투자심리를 시장예측의 한 기법으로 활용하는 섀퍼인베스트먼트리서치는 다우지수 6000, S&P500지수 500을 예상하고 있다. 나스닥은 800에서 바닥을 칠 것으로 추정된다.
인베스테크리서치의 사장인 짐 스택은 “그동안 형성된 거품이 이제서야 꺼지기 시작했다”며 “전체적인 긴축 과정이 예측불허라 증시 위축이 경제의 심각한 병증을 반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들 주식시장 약세론자들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래도 이들은 월가에서는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메릴린치가 월가 전략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증권사 전략가들은 강세장을 굳게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투자자금 중 68%는 주식, 24%는 채권, 나머지는 현금보유를 추천하고 있다. 이 같은 주식소유 추천비중은 지난해 초에는 못미치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들 낙관론자는 대부분 현재의 증시 침체가 주가상승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믿고 있다. 미국 경제가 낮은 인플레에 저금리, 약하기는 하지만 꾸준한 회복세, 기업들의 영업마진 호전 등 근본적으로 건전하다는 믿음이다. 투자자들이 이 같은 사실을 깨달을 경우 채권에서 자금을 빼 주식으로 집어넣으면 주가가 치솟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렇다면 양측의 주장이 다 옳을 수도 있을까. 물론이다. 폭등과 폭락이 치열하게 다투던 29년부터 49년 사이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나스닥이 29년의 대폭락 이후 다우지수 패턴을 따른다해도 주가가 앞으로 수개월 동안 마냥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짧게 폭등이 나타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87년의 주가폭락을 정확하게 예측한 바 있는 셰퍼드캐피매니지먼트 사장인 짐 셰퍼드는 “굉장한 주가폭등이 따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29년의 대폭락은 그 뒤 20년 동안 강세장과 약세장이 반복되는 현상의 첫 단계에 불과했다. 다우지수가 대폭락 기간 두달에 걸쳐 48% 폭락한 뒤 5달 동안 재빨리 회복세를 보였던 것이다.
2000년 3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나스닥도 하락을 거듭하다 그해 7월 17일 1100 포인트로 사상 최고치에서 18% 근접한 수준까지 반등했었다. 두 경우 모두 경기가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우지수는 30년 두번째로 폭락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폭락이 끝난 뒤 다우지수는 32년 7월 8일 29년의 최고 수준에서 89% 폭락한 41.22에서 바닥을 쳤다.
주식투자자들은 대공황이라는 엄청난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 뒤 5년간 다우지수가 회복되는 틈을 타 괜찮은 성과를 올렸다. 32년 바닥에서 균등하게 30개 다우지수 편입종목에 1000달러를 투자했을 경우 이 투자금은 37년 3월 10일까지 주가상승만으로 4730달러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 발발과 더불어 세번째로 약세장이 전개되면서 42년까지 수익 중 거의 2500달러가 날아갔다. 다우지수는 49년 6월 13일 161.60으로 29년의 최고치 대비 57% 하락한 수준에 머물렀다. 29년의 시장 폭등에 도취됐던 투자자라면 주식을 20년 동안 보유했더라도 원금의 거의 절반을 잃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2000년 초 인터넷 거품에 사로잡혀 있던 하이테크 종목 투자자들에게도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질까. 나스닥이 매년 3% 미만 올라 2020년에 2170에 머무는 상황이 벌어질까. 그 해답은 경제가 관건이라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추가적인 하락은 경기가 침체될 때만 가능하지, 경기가 성장할 경우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네드데이비스리서치 세계 시장 전략가인 팀 헤이예스는 “주식시장의 극단적인 낙관론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만, 30년대보다는 경기가 더 나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재빠르게 금리를 인하하면서 통화공급을 늘려왔다. 반면 30년대에는 FRB가 일본의 중앙은행이 90년대 그랬던 것처럼 너무 더디게 대응했었다.
미 행정부는 지난해 9·11 테러 사태 이후 군사력 증강을 위해 재정적자를 보이고 있는데 이도 경기 진작에 도움이 될 게 틀림없다. 32년의 어두운 경기 여건과 현재 상황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앞으로도 증시 침체와 성장률은 경기를 알리는 지표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
인베스테크리서치의 스택 사장은 “앞으로 60일 동안 상황이 보다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니박기자 conypark@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