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전자업체인 소니의 미래를 보여주는 ‘소니 드림월드 2002’ 전시장.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의 후쿠나가 부장은 취재진들을 위해 간략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는 먼저 가정용 게임기의 역사를 노트북PC 화면으로 보여주며 소니의 게임기 사업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설명했다. 그런데 이날 후쿠나가 부장이 사용한 노트북PC는 소니의 ‘바이오’가 아닌 IBM의 제품이었다. 요즘 세계 노트북PC시장에서 잘나가는 바이오는 올해 탄생 5주년을 맞은 소니 ‘일렉트로닉’ 부문이 자랑하는 제품 중 하나다. 후쿠나가 부장도 기자의 이런 의아(?)를 눈치챘는지 계면쩍게 웃으며 프레젠테이션을 계속 진행했다.
소니 그룹의 두 자회사인 소니일렉트로닉 부문과 SCE간의 미묘한 경쟁의식은 이미 일본 전자업계에도 잘 알려져 있다. 소니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핵심은 다양한 전자·전기제품을 개발 및 제조하고 있는 일렉트로닉 부문이다. SEC는 첨단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2(PS2)로 대변되는 게임 계열의 자회사일 뿐이다. 하지만 일렉트로닉이 적자를 내던 지난해 SEC는 엄청난 흑자를 올리며 그룹 전체가 적자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막아냈다. 이에 따라 최근 입지가 급부상하고 있다.
양자간 신경전은 또 소니의 차세대 전략이라는 ‘큰 그림’과도 연관돼 있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시대를 눈앞에 두고 홈서버 장악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대부분의 PC업체들은 PC가 홈서버로 발전할 것으로 믿고 있다. 소니 일렉트로닉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소니 일렉트로닉 입장에서는 ‘동료’인 SCE가 딴죽을 걸고 있다. SEC의 가정용게임기(PS2) 성능이 이미 PC에 근접해 있는 데다 보급대수도 4000만대(PS2 단독, 세계판매 기준)를 넘어서면서 홈서버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소니 일렉트로닉 입장에서는 같은 계열사지만 ‘얄미운 존재’인 것이다. 소니 일렉트로닉 부문은 이번 행사에서 은연중에 PC를 기반으로 하는 유비쿼터스 전략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SCE는 도시바·IBM과 공동으로 게임기에 들어가는 차세대형 CPU인 ‘셀(cell)’을 개발중인데 이 칩을 차세대 게임기(PS3)에 사용, 가정내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삼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어 양자간 충돌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SCE 부장이 사용하는 노트북PC가 소니 브랜드가 아닌 것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니 계열사들이 차세대 IT시장의 중심에 서기 위해 치열한 경쟁체제에 들어간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hcs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