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단상]환원주의적 생명윤리

 ◆ETRI 박선희 박사(바이오정보연구팀장) shp@etri.re.kr

환원주의란 아무리 복잡한 시스템이라도 그 시스템의 부분들과 이러한 부분들의 상호관계들로 설명될 수 있다는 과학기술의 한 방법론이다. 예를 들면, 생명체의 대사를 이해하려면 세포들과 그들의 상호작용을 이해해야 하는데 세포들은 그들을 이루는 분자와 이온들로 설명이 가능하다.

 또 분자들은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싸고 있는 전자들로 이뤄져 있으며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마지막에는 이들을 이루고 있는 소립자인 쿼크까지 내려가게 된다.

 현대과학의 원동력인 환원주의적인 방법은 인간의 의지, 인식, 영혼 등과 같은 기존의 철학적인 물음들에게도 도전하고 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크릭은 ‘The Astonishing Hypothesis’라는 책에서 ‘영혼(soul)이라는 것은 생화학 물질로 구성된 뇌세포들이 활동하면서 보이는 집단적인 역학이다’라는 엄청난 이론을 제기했다. 따라서 몸과 분리된 영혼의 존재를 믿는 것은 과학적인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는 천동설에 대한 믿음과 같다고 하여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종교적인 논란의 여지까지 남겨놓았다.

 또한 그는 동물의 영혼 존재에 대해 한가지 재미있는 유머를 소개했는데 ‘옛날 철학자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개의 영혼의 존재를 믿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은 부류이다. 전자는 집에서 개를 기르는 사람들이고 후자는 개를 기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라고 하여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믿음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표현했다.

 현재 밝혀진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가 인간 유전자의 수는 실제 추정치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고 따라서 한개의 유전자가 여러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하나의 유전자가 우생학적인 기능에 관련되어 있고 또한 질병에도 관련되어 있다면 ‘질환에 관련된 치료’만이 허용될 생명윤리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여러가지 예외의 경우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히 있어서 법적 결론을 내리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생명에 관한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현재의 법 제도가 많은 부분 업데이트될 것이라는 예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