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대 이동통신 핵심칩의 국산화를 놓고 기지국·단말기 등을 만드는 통신장비업체들이 ‘대의’와 ‘실리’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대의’는 국내 업체들이 개발한 칩을 써서 현재 10%도 안되는 이동통신용 반도체 국산화율을 높이는 것이고, ‘실리’는 보다 값싸고 빠르게 제품을 공급하는 외국업체 중 하나를 골라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분법적이면서도 다소 국수적인 이 논리는 최근 장비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비동기 IMT2000(WCDMA)시장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국산 칩이나 부품의 기술력이 상당히 좋아져 말 그대로 쓸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주요 장비업체가 기지국에 들어가는 칩을 자체 개발한 데다 이미 주파수(RF) 처리에 필요한 칩들은 주요 단말기업체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가장 중요한 베이스밴드 칩(MSM)도 모 벤처기업이 상용화를 위한 막바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대의와 실리를 따로 생각지 않고 국산 칩을 쓰면서 외국업체들에 단가인하를 요구하는 ‘일거양득’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통신장비업체들에 팽배해 있는 구시대적 사고의 발상이다. 중소업체들이 만든 국산 칩은 품질이 떨어지고 회사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세계 최고의 이동통신제품을 만들 때 채용하기가 어렵다는 것. 또 기존 해외 거래선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안정적이고 검증된 외국기업 제품을 쓰는 게 속편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최고 의사결정을 하는 경영층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국산 이동통신 핵심 칩 상용화라는 대명제가 쉬울 리 없다. 사실 외국업체들도 국내 통신장비업체들의 품질규격과 납기요구를 맞추는 데 애를 많이 먹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을 국내 업체가 함께 이겨내고 극복해 ‘대의’와 ‘실리’라는 대명제를 떠나 국산 부품도 채용되는 관행이 뿌리내려야 한다. 국산 제품이 품질과 성능과는 무관하게 문전박대되는 풍토 속에서는 조용히 연구개발에 매달리고 있는 많은 개발진의 의욕과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산업기술부·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