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 업계에 ‘대통합’의 바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히타치와 미쓰비시가 D램을 제외한 반도체 사업을 통합, 세계 2위 규모로 예상되는 반도체 업체 르네상스를 내년 4월 1일까지 설립키로 했다. 또 미쓰비시는 통합에서 제외된 D램 사업을 3월말까지 NEC·히타치 합작사인 엘피다로 이관키로 결정, 일본의 주요 5대 반도체 업체의 메모리 사업이 모두 엘피다로 통합되게 됐다.
히타치와 미쓰비시의 합의는 지난 3월 18일 양사가 시스템 LSI 사업 통합을 논의키로 합의한 데 따라 이뤄진 것으로 통합 대상이 당초보다 대폭 늘어난 것이다. 대상 품목은 양사의 D램을 비롯해 미쓰비시의 광반도체와 파워반도체, 히타치의 전력용 반도체 서버용 반도체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마이크로컴퓨터, 로직·아날로그 디바이스, 개별 소자, 플래시 메모리, S램 등 대부분이다.
르네상스의 자본금은 500억엔으로 히타치와 미쓰비시가 각각 44%와 55%의 지분을 참여하며 현 미쓰비시전기의 반도체 사업부 사장인 나가사와 고이치가 회장겸 최고경영자(CEO)로, 현 히타치의 반도체 및 IC 사업부 사장겸 CEO인 이토 사토루가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내정됐다.
미쓰비시가 엘피다에 넘겨줄 D램 사업의 규모는 20억∼30억엔 규모로 추산되며 여기에는 기술 개발 및 고객 지원 등의 조직과 2만7200명의 인력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미쓰비시는 내년 3월말까지 모든 D램 생산을 중단하게 되며 엘피다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일부 물량을 대행 생산하게 된다.
◇배경=일본 반도체 업계의 대통합은 한국의 삼성전자 등 경쟁 업체에 주도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반도체 경기 침체마저 지속되고 있는 데 따른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히타치와 미쓰비시의 합작사 명칭이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의미하는 ‘고등 솔루션을 위한 르네상스반도체(Renaissance Semiconductor for Advanced Solutions)’에서 따온 것만 보아도 일본 반도체 업체들의 절박한 심정이 드러난다.
양사는 합의 발표를 통해 “IT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점점 단축되고 있어 반도체 산업은 제품 개발 시간을 줄여야 하는 압력에 직면했다”며 “그동안 자율적인 경영이 어려웠던 반도체 부문의 통합을 통해 의사결정이 신속해지고 대규모 자금조달과 자본지출이 용이해져 성장하고 있는 LSI시장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엘피다의 사장인 도쿠야마 겐지 사장도 “다양한 방법으로 자본을 조달할 것”이라며 “엘피다는 어떻게 자본을 끌어 모을 수 있을지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 통합사 규모=르네상스는 오는 2004년 3월 마감하는 첫 회계연도에 9000억엔(약 73억3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다. 이럴 경우 르네상스는 인텔에 이은 세계 2위의 반도체 업체로 부상하게 된다. 양사는 르네상스가 모바일, 네트워크, 자동차, 디지털 가전 등의 분야를 앞세워 세계 최대의 시스템온칩 업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엘피다는 미쓰비시 D램 부문의 인수 발표와 함께 대만 파워칩과의 제휴도 확대한다고 밝히고 인텔 등 외국 업체의 지분 참여도 기대했다. 이 회사는 일련의 통합 과정을 통해 현재 8.5%인 D램 세계 시장 점유율을 13%로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망=현재 일본의 5대 반도체 업체는 모두 엘피다 한곳으로 D램 사업이 통합되며 시스템칩 분야는 르네상스, 도시바와 후지쯔, NEC 등 3개 진영으로 축소된다.
엘피다의 경우 통합을 통해 경비를 절감하고 기술 개발 성과를 거두는 등 일단은 통합의 덕을 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엘피다는 지난 2001회계연도에만 500억엔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고 관리 능력이 검증된 UMC재팬의 전 사장인 사카모토 유키오를 사장으로 영입하는 것을 고려하는 등 구조조정이 더딘 상황이다.
애널리스트들은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해외 업체를 포함한 추가 통합·제휴가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시스템칩의 경우 NEC가 다른 진영에 합류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러나 해외 업체의 합류를 이끌어내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엘피다와 제휴를 맺고 있는 파워칩의 회장겸 CEO인 프랭크 후앙은 “엘피다에 당장 지분을 참여하는 것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 엘피다 수석 부사장인 야스이 도쿠마사에 따르면 당초 엘피다에 지분을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던 인텔도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