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조업체들의 생산기지 해외이전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한국 제조업의 기반인 전자산업의 공동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니 심각한 일이다.
국내 전자업계의 해외투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외국 기업들의 국내투자는 계속 줄고 있어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국내 전자산업은 조만간 말 그대로 텅 비게 될 것이라고 한다. 세계 4위의 전자산업 생산규모를 자랑하는 한국 전자산업의 현주소가 이 정도라면 한국 전자산업의 앞날은 암담할 것이란 점에서 예삿일이 아니다. 규모가 큰 만큼 전자산업이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전체의 34.3%인 515억달러에 달해 한국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국내 전자산업의 공동화에 대해 나름의 대책을 수립하지 못한다면 수출시장 위축과 수출감소는 물론이고 자칫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가뜩이나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기 침체와 유가상승 등의 여파로 기업환경이 악화되고 이것이 IT를 비롯한 전자산업 전반에 주름살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제조업 기반마저 무너진다면 국가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미칠 것이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정보통신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2000년의 238건에서 24.7% 감소한 179건, 금액으로는 24억900만달러보다 33.8% 줄어든 15억93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한다.
반면 국내 전자업체들의 지난해 해외투자는 261건, 23억9000만달러로 2000년 대비 건수는 24.8%(209건), 금액으로는 406.4%(4억7200만달러) 증가했다는 것이다.
올들어서도 이같은 추세는 변함이 없어 지난 8월까지 외국인의 국내 전자산업에 대한 투자는 80건, 2억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비 건수는 41. 6%(137건), 금액은 77.4%(9억600만달러)나 급감했다. 이에 비해 한국수출입은행이 집계한 해외투자 통계에 따르면 올들어 8월까지 국내기업의 해외투자는 208건, 6억1000만달러로 지난해에 이어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전자업체들이 원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원가가 상대적으로 싼 중국·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생산라인을 옮기는 것은 글로벌시대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세계 주요업체들의 국내투자는 계속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 이유가 우리나라의 투자여건과 시장성이 중국보다 못하기 때문이라면 사태는 심각하다.
이를테면 국내에서 기업하는 데 행정절차가 복잡하고 규제가 많은데다 고임금이나 노사대립 등으로 경영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 투자를 기피한다면 국내 전자산업의 기반은 무너질 것이고 우리 경제는 지금보다 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외국 업체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각종 행정규제를 비롯해 노사관계 등 외국 기업들이 투자를 피하는 문제를 파악해 이를 해결해야 외국 기업들이 몰려 올 수 있다.
국내 생산기반의 약화는 고용불안·수출감소 등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마침 오늘부터 코엑스에서 ‘2002 한국전자전’이 열린다. 이번 전자전이 한국 전자산업의 현주소를 재점검하고 이를 통해 전자산업 공동화를 막아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전자산업 교역확대를 통해 수출을 늘리고 제조업 기반을 견고히 다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