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글날의 고해성사

 

 오늘은 77회째 맞는 한글날이다. 반포 당시 ‘훈민정음’이라고 불린 한글은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한나라말’ ‘한나라글’이라고 쓴 데서 비롯됐다. 1926년에 처음으로 날을 정해 기념했는데 당시에는 가갸날이라고 불렀다.

 정보통신(IT) 분야가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각광받으면서 외래어(대부분 영어지만)도 늘어만가고 있다. 이는 IT산업 종주국이 미국인 까닭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인스턴트 메신저 채택’ ‘콜센터 솔루션 사업 강화’ ‘모바일 통합 플랫폼 출시’ ‘솔루션 비즈니스 사업강화’ 같은 외래어가 절반이 넘는 말들을 쓰고 접할 때마다 “이래도 되나...?”하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

 콘퍼런스, 오프라인, 포럼, 웹서비스, 사이버쇼핑, e비즈니스 등 IT산업 특성상 외래어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그나마 이같은 단어들은 나은 편이다. e폴리틱스(온라인 정치), 프로모션(판촉), 하이엔드(고성능) 같은 굳이 영어를 안써도 될 말까지 겁도(?) 없이 사용되면서 주도적 외래어 행세를 하고 있다.

 20세기 최고 발명품이라는 인터넷 등장 이후 외래어를 적확한 한글로 바꾸려는 고민도 없이 이같은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과 기술이 쏟아지는 IT산업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한글 때문에 녹(?)을 먹고 사는 기자로서 이같은 ‘한글 게으름’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한글은 세계 언어학자들이 인정하는 독창적이고 과학적 언어다. 심지어 유네스코는 1997년 한글을 ‘세계가 보호해야 할 문화유산’으로까지 정했다. 세계 최고의 IT인프라 구축과 함께 세계 최고의 IT 제품을 속속 내놓고 있는 우리 IT업체들도 이제 제품의 세계화뿐 아니라 한글의 세계화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한글로 된 우리 제품이 뉴욕, 런던, 파리, 도쿄, 싱가포르 등을 누빌 생각을 하면 너무나 신이 난다. 이면우 교수 말처럼 우리제품에 대해 우리가 가격 결정권을 갖게 된다면, 그만큼 세계 최고의 기능과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내놓게 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국제부·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