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장
지난달 29일에 개막해 16일 동안 열전을 치른 부산 아시안게임이 오늘 막을 내린다.
아시안게임은 61억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37억 아시아인의 제전으로 명실공히 ‘세계적인’ 축제다.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처음 출전한 북한, 독립에 이어 자립의 꿈을 차근차근 실현해가고 있는 동티모르, 전란의 참화에서 이제 막 벗어난 아프가니스탄 등 사상 최대규모인 44개국 9900여명이 참가해 그 의미를 더했다.
그러나 경기장의 분위기는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 부산·울산·마산·창원 등 경남지역 40여곳에서 벌어진 각종 게임은 일부 인기종목을 제외하고는 관중석이 텅 비는 민망한 상황을 면치 못했다. 심지어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을 일궈냈던 경기라도 그것이 비인기 종목이었다면 어김없이 관중석은 텅 비었었다.
이런 현상은 지난 6월 월드컵에서도 나타나 관계자들의 애간장을 태웠었다. 명색이 개최국인데 자국팀과 인기팀을 제외하고는 경기장이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우리팀이 승승장구하면서 봄눈 녹듯 사라졌다. 처음 광화문에서 시작된 붉은악마의 길거리 응원은 1승, 16강, 8강, 4강으로 이어지며 전국 방방곡곡으로 붉게 번져갔다.
그렇다면 이번 아시안게임과 지난 월드컵 경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다같이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시작했건만 하나는 살아나고 다른 하나는 살아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스타’의 존재 여부다. 월드컵의 경우 세계 4강까지 치고 올라간 우리 대표팀과 거리에서 분위기를 주도한 ‘붉은악마’라는 확실한 스타가 있었다. 그들이 경기장과 거리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처음 우려했던 냉담한 분위기는 금새 반전됐다. 확실한 스타는 확실한 파급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안게임에는 월드컵에 필적할 만한 확실한 스타가 없었다. 그나마 북한응원단이 경기내내 언론과 사람들을 몰고다니며 스타 역할을 해줬지만 아시안게임의 전체 분위기를 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스타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또 궁극적으로 스타에만 의존하는 시스템은 결코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 원칙적으로는 일반국민 모두가 다양한 생활체육을 즐기고 그 활동이 자연스레 엘리트 경기관람으로 이어지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런 기반이 취약할 경우 단기간에 일정 수준 이상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는 스타의 존재가 매우 필요하다. 국민의 인식을 바꾸는 데 있어서도 확실한 스타 하나가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우리가 스타를 평가할 때 흔히 ‘공인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이와 같은 공공적인 파급효과를 감안하기 때문이다. 스타는 단순한 개인이라기보다는 해당분야를 선도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의도하지 않은 리더’라고 볼 수 있다.
국내 문화콘텐츠산업의 실정 또한 지금의 아시안게임 분위기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현재 국내 문화콘텐츠산업 각 분야마다 나름의 스타가 없지는 않지만 산업 전반을 이끌어갈 확실한 스타는 아직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내시장이 채 성숙하기도 전에 ‘해리포터’와 같은 강력한 해외스타에게 시장을 내주고 있는 형편이다.
문화콘텐츠산업은 특히 ‘원소스 멀티유즈’를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스타의 파급효과는 그만큼 커진다. 축구경기의 스타는 야구경기의 스타가 되기 어렵지만 출판만화의 스타는 애니메이션과 영화, 그리고 캐릭터의 스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국경까지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스타콘텐츠의 파급효과는 무한대라고 평가해도 전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지난달 10일 국내 문화콘텐츠산업을 이끌어갈 5개의 스타콘텐츠가 선정됐다. 이들은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성공가능성이 높고 스타성을 확보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두 개 이상의 콘텐츠 분야가 복합적으로 연계 기획된 프로젝트들이다. 물론 이번 선정으로 말미암아 이들이 당장 우리가 기대하는 스타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진정한 스타란 모두의 관심 속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문화콘텐츠산업의 미래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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