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금속활자와 정보격차

 ◆손연기 한국정보문화센터 소장 ygson@icc.or.kr

 역사를 통해 우리는 위대한 발명이 인류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를 배웠다. 그 중 인터넷은 마우스 하나로 전세계 네티즌과 연대할 수 있게 만들며 지난 세기 정보통신 혁명을 주도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누구도 예측 못할 변화들을 선도할 것이다. 증기기관은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의 힘으로 대체하면서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지우개와 컴퓨터의 ‘del’ 키도 인간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게 한 위대한 발명품으로,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없었다면 인류는 문명의 진보를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서양의 물건들에 끼어 우리에게도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던 위대한 발명품이 있었다. 바로 고려시대의 금속활자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을 보면 고려조의 고종 20년대에 국가의 전례를 기록한 ‘상정례문’이란 책을 주자(금속활자)로 찍어냈다는 기록이 있다.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도 200여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했던 것이다. 게다가 고려의 우왕 3년(서기 1377년)에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사는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1455년에 간행한 ‘42행 성서’를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기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를 시작한 1452년을 매스커뮤니케이션 역사의 기원, 원년이라 일컫기도 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우리 선조들이 위대한 발명품을 적극적으로 대중화·생활화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만들기만 했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6월 정부는 ‘동아시아 정보격차해소 특별협력사업’을 발표했다. 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태국·베트남 등 ASEAN 회원국 위주로 진행되는 이 사업은 IT인프라 구축, IT정책 자문단 파견 및 정보격차해소 연구사업 발굴, 국제 정보격차해소 포럼 개최, ASEAN+3 정보통신 민간협의회 활성화 지원 등 크게 4개의 세부사업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IT선진국으로서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의 정보격차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반대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의 정보격차도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는데 국민들이 낸 세금을 들이면서까지 남의 나라 문제에 관여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목전의 이익만을 쫓는 단견이다.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개도국 정보격차해소사업은 IT후발국의 정보격차해소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투자로 국내 IT산업의 해외진출기반 조성과 IT강국으로서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즉 세계 최초의 3세대 이동통신 국가로 성장한 우리나라가 지난 월드컵을 통해 전세계인들에게 각인시킨 IT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계속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해 밖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세계는 우리나라 IT분야의 눈부신 성장에 놀라워하고 있다. 또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IT를 부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초, 최고인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이것을 더욱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 세계는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 계속 남아있도록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쫓는 입장이 아니라 쫓기는 입장이다. 추월당하지 않고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안에서의 노력과 함께 자꾸만 우리의 성과들을 외부에 알리고 활용하게 함으로써 점점 더 우리의 기반을 넓혀가야만 한다.

 ‘동아시아 정보격차해소 특별사업’은 과거 선조들이 세계 최초의 위대한 발명을 이룩하고도 더욱 발전시키고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했던 과오를 IT분야에서 만큼은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방안이다. 고려의 금속활자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