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벤처 ‘순망치한’

 순망치한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뜻한다. 춘추좌씨전은 희공 5년조에 나온 말이다. 춘추시대 말엽(BC 655), 진나라 헌공은 괵나라를 공격할 야심을 품고 통과국인 우나라 우공에게 그 곳을 지나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우나라의 현인 궁지기는 헌공의 속셈을 알고 우왕에게 불가함을 간언했지만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우왕은 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진나라는 궁지기의 예견대로 12월에 괵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정복하고 우왕을 사로잡았다.

 지금까지의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을 생각하면 서로간 우왕의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벤처캐피털 S사와 투자기업간 투자금 반환과 관련된 법정 다툼이 있었다. 벤처캐피털은 코스닥등록을 통한 자금 회수가 어려워지자 투자지분 환매를 요구했고 벤처기업은 이를 거부, 결국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게 됐다. 법원은 불공정 계약을 이유로 벤처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기본에 충실한 투자보다는 불공정 계약을 통해 리스트만 줄이려고 했던 벤처캐피털들에 철퇴가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결과가 벤처기업의 승리로만 끝난 것일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불공정 계약 관행에서 벗어난 벤처기업에 승리가 돌아간듯 하지만 타격은 오히려 양측 모두에 돌아갔다. 이같은 결과는 벤처캐피털들의 투자를 더욱 얼어붙게 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벤처기업에 돌아가고 있다.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하는 어리석은 게임을 한 셈이다. 출발 자체부터 동반자적인 관계에서가 아니라 서로의 이익만을 챙기려고 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물론 이같은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반대의 경우도 있다. 호시절(?) 벤처기업들의 건의로 만들어진 로크업제도가 벤처캐피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은 어느 하나만으로 굴러 갈 수 없는 수레바퀴와 같은 운명 공동체다. 서로가 잘되면 헐뜯고 깎아내려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국내외 다른 기업, 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협력해야 하는 관계인 것이다. ‘벤처기업이 없는 벤처캐피털, 벤처캐피털이 없는 벤처기업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진리다. 우왕의 어리석음을 되새겨 봐야 할 시점이다.

 <디지털경제부·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