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변화의 필요성

 ◆신현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hyeonam.shin@samsung.com

 

 지난 95년 소니의 오가 노리오 회장은 차기 CEO로 이데이 노부유키를 지명했다. 당시 그의 서열은 13위. 이른바 넘버2나 넘버3가 이어받기 마련인 대권을 10위권 밖의 인물에게 물려준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화제였다. 취임식장은 당연히 기자들로 북적거렸다.

 한 기자가 선배(선대 회장)들의 업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데이는 잠깐 숨을 죽이고는 곧 “선배님들의 업적에 대해 대단히 존경한다. 그러나 결코 참고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행사장에 참석한 사람들의 절반은 고개를 갸우뚱했고, 다른 절반은 ‘저래서 저 사람이 차기 CEO로 지명됐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존경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지난 46년에 창업한 소니는 마쓰시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조그마한 기업이었다. 그렇지만 온갖 역경을 딛고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소니 신화를 이룩한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는 인류역사상 기업이 탄생된 이래 최고 CEO 100명을 꼽으라면 당연히 포함되는 몇 안 되는 아시아인이다. 존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참고하지 않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소니라는 단어에서는 경박단소·깜찍함·워크맨 등이 떠오른다.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AV제품을 만드는 회사. 그렇지만 이데이는 여기서 위기의식을 느꼈다. 제품을 잘 만드는 회사, 즉 하드웨어의 강자는 조만간 콘텐츠·소프트웨어의 강자에게 종속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한편 과거 소니의 성공경험은 오히려 소니를 변화시키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과거의 성공방식에 연연해 하지 않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방식으로 소니를 이끌겠다는 의미다. 실제 신경제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는 많은 변화와 혼돈이 야기된다. ‘change everything’ 정신이 강조되는 것도 패러다임이 바뀔 정도로 커다란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이란 당대를 지배하는 가치관을 말한다. 갈릴레이 이전에는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었지만 이후에는 지구가 태양을 돌게 된다. 다윈 이전에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지만 이후에 인간은 진화하기 시작한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뉴턴의 물리학이 지배했지만 상대성이론이 나오면서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지배를 받는다.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은 사고의 틀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틀은 무조건 틀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과거의 틀은 과거의 상황에서 맞는 것이고 지금의 틀은 지금의 상황에서 맞는 것이다. 갈릴레이 이전에 천동설은 옳은 것이었고, 갈릴레이 이후에는 지동설이 옳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패러다임이 바뀌고 사고의 틀이 바뀐다면 우리의 살아가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알겠지만 나는 변하기 싫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변화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는 혁신 교과서 제일 앞에 쓰인 내용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항을 넘어설 수 있도록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 혁신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논리가 강조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결코 그렇지 않다. 실제 사람은 변화를 즐긴다. 철마다 유행하는 립스틱 색깔이 다르다. 와인 컬러가 주도하던 머리 염색 시장에 블루블랙 등 새로운 컬러가 도전한다. 철 지난 옷은 어린아이도 입지 않으려 한다. 사람의 속성은 변화를 즐기는 것이다. 다만 강요된 변화, 즉 남이 변하라고 시키는 것이 싫을 뿐이다.

 어린이한테는 야단을 치는 것보다 살살 달래는 게 효과적인 줄 안다. 그런데 왜 자기 자신한테만은 유독 엄격히 대하려 하는 것일까. 변화가 절박하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고 하자. 그렇다고 변하겠는가. 그저 세상살기만 더욱 암담해질 뿐이다.

 몇 번의 시도와 실망(좌절이라는 표현은 쓰지 말자)은 당연하다. 하지만 실망 또한 과거에는 없었던 변화가 아닌가. 이처럼 조금씩만, 정말 조금씩만 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