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일류주의` 삼성의 그늘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의 계열사 임원진들은 요즘 해외출장 때마다 밤잠을 설친다. 우수한 해외인재를 확보하라는 이건희 회장의 ‘특명’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출장을 통해 외국에 나가게 되면 틈을 내 현지 핵심 기술인력과 인터뷰를 하고 입사를 권유하는 게 일과가 됐다. 우수 인력을 유치하는 일이 인사고과에 반영되기 때문에 대충이란 있을 수도 없다.

 인력조달에 필요한 세부지침도 마련됐다. IBM·인텔·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등 유명 IT기업에서 5년 이상 근무한 기술인력은 S(슈퍼)와 A(액설런트)급으로 분류된다. 유명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차기 경영자로 키울 인력은 H(하이포텐셜)급으로 처준다. 임원들에게는 별도로 할당량이 주어졌다고 한다.

 이같은 노력 덕분으로 삼성은 상당수 우수인력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애국심을 강조하고 미래의 삼성 비전과 역할론을 제시한 임원들의 설득이 상당히 먹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성의 이같은 움직임을 보면서 많은 전 삼성맨들은 씁쓸해 한다. 풍운의 꿈을 안고 삼성에 입사했으나 꽉 짜여진 삼성의 ‘일류주의’ 틀 안에서 창의력 한번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직장을 떠난 이들은 삼성의 이러한 우수인재 확보 방침에 대해 큰 반감을 나타냈다.

 이들은 ‘전관예우’는 차치하더라도 벤처로 옮겨간 삼성맨들이 핵심 기술 및 영업 비밀을 유출했다거나 인력을 빼갔다며 파렴치범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경쟁 제품이 나올라치면 호시탐탐 견제하고 시장에 발을 못 붙이게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는 그들에게 ‘친정집’에서 재를 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 삼성맨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삼성의 인력 정책이 뭔가 허점을 드러내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인재 등용주의’라는 화려한 미사여구에 앞서 삼성맨에서 반 삼성맨으로 변해가는 출가한 식구들에 대한 인력관리가 선행돼야 우수인력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산업기술부·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