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의 일등공신이며 한국이 정보기술 강국으로서의 명성을 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반도체 경기가 내년부터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다.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데이터퀘스트와 세계반도체산업협회(SIA)가 반도체 경기회복을 낙관한 데 이어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인스탯/MDR도 최근 발표한 조사보고서를 통해 내년도 반도체시장이 올해보다 18.1% 증가한 1642억달러로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휴대폰시장의 급팽창과 PC교체가 맞물리면서 침체의 늪에 빠졌던 반도체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국면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오는 2004년 이후에나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던 반도체 경기회복 시기가 앞당겨지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세계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 부진과 내수 및 설비투자 감소로 우리 경제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 경기회복이 우리 경제의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 청신호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시장조사기관들이 이처럼 반도체 경기회복을 낙관하는 것은 이동전화단말기와 전자제품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 지난해 소비액(1조1800억달러)보다 2% 정도 감소했던 전자제품 소비액이 내년에는 3% 늘어난 1조1890억달러로 형성되고, 이동전화단말기시장이 지난해 58억달러에서 내년에는 69억달러로 확대되는 등 소비자 가전제품 수요증가에 힘업어 반도체 경기가 동반상승할 것이란 전망이다. 또 Y2K 이후 정체국면을 보이던 가정용 및 업무용 PC의 교체시기 임박과 모바일기기산업의 호황도 시장을 낙관케 하는 요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변수는 많다. 올 하반기부터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D램 경기가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며 크리스마스 특수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PC특수 없이는 반도체시장 성장률이 미약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안한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세계경기의 성장엔진 역할을 하는 미국의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와 설비투자가 부진한데다 기업실적도 예상보다 저조하다. 자칫하면 성장은커녕 이중침체(더블딥)에 빠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처럼 경기회복의 걸림돌이 될 복병들이 이곳저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경기회복을 낙관하는 것은 아직 이른 것 같다. 설사 반도체 경기가 내년부터 회복되더라도 이것이 적신호가 켜진 국내 경기를 청신호로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의 경기회복이 지연되면서 우리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 확보에 큰 역할을 하는 원화 약세 기조가 강세로 바뀌고 있으며, 국제유가도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업체들은 포스트 D램 시대에 대비한 나노 공정기술 및 장비·재료 개발체제 구축과 함께 300㎜ 웨이퍼 생산시설에 대한 적기투자, 그리고 제품 개발 및 설계능력 향상에 만전을 기하는 등 반도체 경기회복과 지연에 대비해야 한다.
전문 기술인력의 원활한 수급체계 구축과 12%에 불과한 장비산업의 국산화율 제고도 서둘러야할 과제라고 본다. 적합한 투자환경 조성과 수출·마케팅 능력 극대화를 통해 반도체 경기회복을 재도약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