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지상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단어 중 하나가 ‘디플레이션’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경기침체와 이에 따른 물가하락’ 정도가 된다. 최근 통계청 조사 결과 소비자 기대지수와 소비자 평가지수가 모두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는 등 국내 소비자들의 소비심리 위축이 표면화됐고 이것이 경기위축의 징후가 아닌가 하는 우려감까지 낳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불과 2∼3년 전까지 신경제의 단맛을 향유하던 미국의 기세가 꺾였고 10년 장기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일본이나 유럽 역시 높은 성장세를 보이기 힘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내년도 경기호전 여부를 둘러싼 세계 경제석학들의 논쟁이 연일 지면을 장식하고 있지만 누가 얼마나 정확한지 독자로서는 혼란스러울 정도다.
어쨌든 우리 가까이에 디플레이션이란 큰 움직임이 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그래서 97년 IMF사태 직후부터 디플레이션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미국의 경제전문가 게리 실링 박사의 얘기에 귀기울여 봄 직하다. 그는 3∼4년 전 미국의 경기가 정점에 달해 있을 때 이후 디플레이션 방향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줄곧 주장해왔다.
인플레이션을 전제한 정부의 긴축 노력, 기술 발전과 글로벌 소싱에 의한 전세계적 제품가격 인하, 글로벌 차원으로 일어나는 제품의 대량유통, 강한 달러, 경기침체에 따른 미국 국민의 증권 의존 회피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최근의 흐름이 희한하게도 이 같은 예상과 맞아떨어지고 있다. 특히 나스닥의 침체 등 부진 속에 헤매는 미국 경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전세계 산출량의 20% 이상을 구매하며 저축보다 주가상승에 의존하는 미국 소비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장에서도 정부가 1년여 전 소비진작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한다고 내세운 정책의 약효가 거의 다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스런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올해 유통가가 당초 매출을 달성하기 힘든 상황에 몰리고 있고, 백화점 매출이 감소한다는 점도 그 증표라 할 것이다.
국제유가 및 원자재 동향 역시 불투명하기만 하다. 하지만 적어도 향후 지속적으로 글로벌 소싱· 기술 발전에 의한 제품가격 하락의 추세가 이뤄지게 되리라는 전망에 대비해야 함은 분명한 것 같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디플레이션시대의 도래 분위기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비슷한 상황이었던 지난 82년 시점에서 조사·분석한 게리 실링 박사의 조사 결과에 눈여겨 볼 만하다. 그의 ‘패배하지 않은 기업’ 목록에는 부채가 적거나 없는 기업, 우량주식채권 저비용 생산자, R&D, 벤처기업가, 가격증대보다 매출증대로 이윤을 확보하는 기업, 국제원자재 사용자 등이 들어 있다.
최근의 경제 추세를 볼 때 우리 기업들도 조만간 디플레이션시대를 맞이할 것이란 전제 아래 향후 기업이윤이 완만하게 증가할 시점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 우려하고 겁낼 필요는 없다. ‘전반적 물가율 하락이 예상되긴 하지만 아직 플러스 상태’를 상정한 ‘디스인플레이션’ 개념으로 대비하자는 것이다.
<이재구 정보가전부 차장 jklee@etnews.co.kr>